10월 호법법회(10/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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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호법법회(10/7,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10-07 13:52 조회1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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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호법법회가 10월7일(수) 벽암 지홍큰스님의 법문으로 여법하게 봉행되었습니다.

 

큰스님 법문 영상보기 

https://youtu.be/0y46XCu7Qqk

 

오늘 사회는 지승거사님께서, ppt봉사는 무구행보살님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철산구 식구들의 점심공양 준비와 움직이는 가피 봉사로 진행되고 

법회후 수도권구(명등 미묘심) 주관 불기닦기 운력이 진행되는날..

 

함께해 주신 모든분들께 감사와 찬탄의 박수를 올립니다~~~~

 

추신) 법회 봉행일에도 체험관 공사는 계속됩니다.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쉼없이 오가며

오후엔 체험관1층 회랑 콘크리트 타설하는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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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500년 불교탄압의 역사와 오늘의 호법

                 <역사속에 왕성했던 불교는 어디로 갔을까?>


                                                   벽암 지홍스님


불자 여러분, 우리가 산길을 걷다 보면 절터만 남아 있는 곳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돌계단과 축대, 부서진 석탑, 불상이 놓였던 빈 좌대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그 많던 절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 까닭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고려 말 불교계의 여러 폐단에 대한 비판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세우려는 조선의 성리학자들에게 불교 자체를 억제하는데 머물지 않고 말살하는 논리로 확대되었습니다. 조선이 건국된 뒤 사대부들은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을 줄이고자 끊임없이 억불과 척불을 주장했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불교를 한꺼번에 없앤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승려의 신분을 인정하는 도첩제가 국가로부터 폐지되고, 사찰의 토지와 재산을 빼앗겨 축소되었으며, 승려들은 점차 국가의 각종 부역에 동원되었습니다. 한양의 궁궐과 성곽을 짓는 일에서부터 산성 축조, 왕릉 공사, 벌목, 석재와 벽돌 제작, 군량 운송, 시신 매장, 종이 생산에 이르기까지 승려들의 노동력이 광범위하게 이용되었습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승려들은 의승군으로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섰습니다.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을 비롯한 여러 산성을 축조하고 방어했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 부담은 계속되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의로운 승려’라 불렀지만, 평상시에는 ‘놀고먹는 자’라는 멸시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조선 후기 불교가 겪었던 가장 큰 모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승려들은 나라를 위해 피와 땀을 흘렸지만 불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점점 차가워졌습니다. 굳건했던 왕실과 불교의 관계도 점차 약화되었고, 현종 때에는 원당(왕궁내 법당)을 철폐하고 승려들을 환속시키려는 정책까지 추진되었습니다. 사찰은 경제적으로 궁핍해졌고, 과도한 종이 생산과 각종 부역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는 사찰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산속으로 들어가 수행을 이어간 스님들이 있었고, 백곡 처능과 같은 스님들은 불교의 존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부당하다는 상소했습니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비롯한 승려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승군을 이끌었습니다. 억압 속에서도 수행과 자비, 호국의 정신을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산속으로 들어가 수행을 이어간 스님들이 있었고, 백곡 처능과 같은 스님들은 불교의 존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부당하다는 상소했습니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비롯한 승려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승군을 이끌었습니다. 억압 속에서도 수행과 자비, 호국의 정신을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

호법(護法)은 단순히 절을 지키고 불교를 방어하는 일이 아닙니다. 불법의 참된 가치를 지키고, 그 가치를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내는 것이 진정한 호법입니다. 과거에는 사찰의 건물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 중요했다면, 오늘날에는 불교의 정신과 수행의 전통을 지키는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절이 아무리 크고 아름다워도 그 안에 수행하는 사람이 없고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이 없다면 불교의 생명은 약해집니다. 반대로 작은 법당이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마음을 닦고, 이웃을 돕고, 어려운 사람과 함께한다면 그곳에는 살아 있는 불법이 있습니다.


  우리 금강정사가 창건 정신으로 삼아온 ‘이웃과 함께, 지역사회와 함께, 미래를 향하여’라는 뜻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불교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불교가 세상에 꼭 필요한 가르침임을 우리의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불교가 지켜야 할 것은 과거의 사찰 숫자만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 수행의 전통, 그리고 중생을 향한 자비 보살행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현대의 호법입니다.


  조선 500년의 역사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외부의 탄압도 불교를 어렵게 만들지만, 불교 내부의 타락과 안일함 역시 불교를 약하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호법은 남을 탓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먼저 내가 불자로서 바르게 살아가는 데서 시작합니다.

  한 사람의 불자가 매일 마음을 닦고, 한마디의 말을 자비롭게 하고, 한 가지의 선행을 실천하고 한 사람에게 전법을 실현한다면 그것이 바로 호법입니다. 자녀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고,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며, 절에 와서 법문을 듣고 수행하는 것도 호법입니다.


  그 많던 절들이 사라진 역사를 기억합시다. 그리고 다시는 불법의 등불이 우리의 무관심 때문에 꺼지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절을 지키는 것은 건물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佛法을 지키는 것이며, 법을 지키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과 삶을 바르게 세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작은 전법의 등불 하나씩을 밝힌다면, 한국의 1700년의 불교가 다시 미래의 1000년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새롭게 서원해야 할 호법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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