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기 기본교육 개강(3/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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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자를 위한 제73기 불교기본교육이 3월7일(토) 오후2시
벽암 지홍큰스님의 개강 환영 법문으로 여법하게 개강하였습니다.
큰스님께서는 환영 법문으로 "부처님의 중심 가르침"을 말씀주시며
불교의 목표는 윤회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벗어나는 해탈임을 강조하십니다.
2부에서는 향산스님(73기 지도법사)의 진행으로 각자의 소개 및 이번 교육에 함께하게 된 인연들을 공유하는
마음나누기로 진행되었네요.
거리 플랭카드를 보고, 지인의 소개와 적극적인 추천으로, 심지어 교육비를 내주는 성의에 못이겨 참여하였다는
분들도 계시네요. 모녀지간 함께오신 분들도, 집은 수원이지만 가게가 일직동이라서 잠시 가게문을 닫고
교육에 오신분, 이번 기수는 가장많은 인연은 지난해 학업성취기도를 회향하신 분들이 대거 일곱분이나 수강하셨네요.
다양한 인연으로 함께한 73기 기본교육은 오늘(3/7,토) 시작해서 5월16일(토) 수계,수계식까지 3개월 동안
진행될 예정입니다. 교육에 함께하신 모든분들께 수희 찬탄합니다.^^
추신) 개강을 축하하기 위해 대각 신도회장님과 도안 부회장님께서 함께해 주셨네요.. 그리고 이번 기수 교육지원팀은
청여거사님, 봉경덕보살님, 무구행보살님 3분이 수고해 주십니다~~~








부처님의 중심 가르침
벽암 지홍스님
1.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무엇이라 할 수 있습니까?
A.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知慧와 慈悲라 할 수 있습니다. “안으로 지혜를 깨닫고, 밖으로 자비를 실천하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내면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지혜의 종교이고, 타인에 대한 끝없는 연민을 강조하는 자비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모든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보는 연기(緣起)의 진리를 바로 깨달아 마음의 어둠을 밝히는 것이고, 자비는 모든 존재가 나와 분리된 둘이 아니라는 자각에서 나오는 연민의 마음과 배려의 실천입니다. 모든 존재는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존재들과 서로 의지하여 존재한다는 것이 연기설緣起說입니다. 따라서 연기의 이치를 알면 ‘나’라고 하는 독자적인 실체가 없다는 ‘무아(無我)’를 체득하게 되고, 모든 존재는 독립적 실체가 없다는 ‘공(空)’을 깨닫게 됩니다.
나와 존재에 대한 이와 같은 지혜에서 나와 너를 구별 짓는 차이와 경계는 사라지고, 모든 중생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며 보살피는 자비의 실천이 나옵니다. 따라서 자비는 끝없이 자기중심적 욕망을 내려놓음으로써 나와 남이라는 경계를 해체하는 지혜의 실천입니다. 이처럼 지혜와 자비가 불교의 핵심이기 때문에 이상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으로 압축됩니다. 위로는 깨달음을 추구하여 지혜를 얻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여 자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2. 불교 윤회의 교리가 인류에게 어떤 긍정적 작용을 합니까?
A. 윤회(輪廻)란 우리의 삶이 한 번의 삶으로 끝나지 않고 과거에서부터 무한한 미래로 이어지는 순환적 삶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다. 그 긴 시간에 걸쳐 중생은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이라는 육도의 세계를 돌고 돈다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에는 다음과 같은 긍정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윤회설은 순환론적 세계관입니다. 삶의 터전인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함으로써 모든 것이 돌고 순환하고 있는 것이 자연의 섭리입니다. 윤회는 그와 같은 우주적 질서에 대한 통찰에서 나온 순환에 대한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서산으로 기운 태양은 내일이면 다시 떠오르고, 낙엽이 진 자리에는 새싹이 다시 돋아납니다. 여기서 변화와 쇠락에도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희망을 보는 긍정적 태도를 갖게 합니다.
둘째, 자율과 책임의 윤리입니다. 육도를 윤회하는 동력은 자신의 업(業)입니다. 선업을 쌓으면 좋은 곳에 태어나고, 악업을 쌓으면 나쁜 곳에 태어납니다. 고승들의 법문에 보면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면 지금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다음 생을 알고자 하면 지금 하는 행위를 보라.”고 했습니다. 윤회에 따르면 자신의 삶을 결정짓는 것은 자신의 업(業), 즉 행위입니다. 따라서 윤회설에는 삶에 대한 자율과 그에 대한 책임의 윤리를 담고 있습니다.
셋째, 불교의 목표는 윤회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벗어나는 해탈解脫입니다. 윤회의 삶이 속박이라면 해탈은 결박에서 벗어나는 초월의 삶입니다. 불자들은 해탈을 지향함으로써 일상의 한계와 욕망을 넘어서는 자기 초월을 지향합니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현재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그것을 초극하라는 진취적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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