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점등 및 다라니기도(4/24,금)
본문
부처님오신날을 준비하며 대웅전 및 도량 연등점등식이 4월24일(금) 다라니기도일에 봉행되었습니다.
사회자 봉경덕보살님의 마하/반야/바라밀 선창에 따라형형색색 연등이 환한 불빛과 함께
대웅전을 장엄합니다.
"중생의 진실한 행복을 지키시고자 등불로서 오신 부처님의 가피로
분단 조국에는 통일을, 대립의 마당에는 화합을, 침체의 구렁에는 용기와 활력을,
증오와 갈등에는 사랑을, 두려움과 속박에는 자유평화를, 아집과 독선에는 제법실상을,
안일과 해태심에는 정진을, 두려움과 무지에는 지혜의 광명을 밝히게 하옵소서"
(도안 한규석 거사님(신도회 부회장) 점등발원문 中)
연등점등식 벽암지홍스님 인사말씀 동영상보기
큰스님께서 말씀주신 지혜의 연등을 밝히는 의미를 함께 새기며
다라니기도 정진에 집중, 지속, 실천의 수행을 이어갑니다.
다라니 기도 회향은 큰스님의 축원과 바라밀정근으로 마무리하며
오늘 큰스님 기도 정리말씀은 "광덕스님의 다라니기도" 이야기로 풀어주십니다. 은사스님이신 금하 광덕스님의
기도정진을 몸소 배워 익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정리말씀속에 묻어납니다.
함께해 주신 모든분들께 감사와 찬탄의 박수를 올립니다...~~~~












광덕스님의 다라니 1만독 기도
광덕 스님(1927~1999)의 천수다라니 기도는 한국 불교 현대사에서 '지성감천'의 표본으로 불립니다.
광덕 스님은 젊은 시절 1950년대 중반, 폐결핵이 악화되어 요양이 필요했던 때, 부산에서 가까운 기장군 연화리 앞바다에 있는 죽도(竹島)로 들어가셨습니다.(당시 섬에 대나무가 울창하여 죽도라 했음.) 죽도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척박한 환경이었으나, 스님은 이곳에서 생사를 건 천수다라니 1만독 '용맹정진'을 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당시 광덕스님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고 병세도 깊어, 한겨울에도 불을 때지 못하는 차가운 냉방에서 기도를 이어가셨습니다. 방 안이 너무 추워 졸음이 오면 밖으로 나가 대밭 아래를 거닐며 끊임없이 다라니를 외우셨다고 합니다. 극한의 환경이 오히려 스님의 구도심을 더욱 간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스님의 기도는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일심(一心)과 '끊임없는 지속’이였습니다. 단순히 횟수를 채우는 것을 넘어, 생사의 기로에서 천수다라니 1만독 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목숨을 건 용맹정진을 하셨습니다. 앉아 있을 때는 물론이고, 졸음을 쫓기 위해 걸을 때(포행)나 잠시 누워 있을 때조차 마음속에서 다라니가 끊이지 않게 하셨습니다.
스님은 다라니를 외우는 행위가 단순히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내 생명 안에 깃든 '부처님의 생명(법성생명)'을 일깨우는 파동이라고 믿으셨습니다.
"나는 병든 육체가 아니라 본래 온전한 광명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독송하셨습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자기 암시와 신앙적 확신이 치병의 핵심 동력이 되었습니다.
몸이 약해 오래 앉아 있기 힘들 때는 밖으로 나가 걸으면서 천수다라니를 독송하셨습니다. 이는 육체적 한계를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스님은 정진 중에 신비로운 체험을 하셨습니다.
어느 날 자정쯤 포행을 마치고 방에 들어왔을 때, 한 여인이 나타나 “좋은 법문을 들려주어 감사하다”며 절을 하고 사라진 일이 있었습니다. 이는 스님의 일심 정진이 유주무주(有住無住)의 모든 고독한 영혼들까지 감동시켰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스님은 다라니 1만독 기도를 통해 폐결핵을 완치하셨고, 또한 수행력을 얻으셨습니다. 이후 50여년 동안 "우리는 본래 부처님 생명이다"라는 '불광(佛光)' 정신을 제창하며 한국불교 도심 포교의 새 장을 여셨습니다.
"광덕 스님은 따뜻한 방이 아니라 얼음장 같은 냉방에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천수다라니를 외우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는 다라니 기도는 스님의 1만 독 정진에 비하면 작은 시작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 안의 빛을 깨운다'는 그 마음만큼은 스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간절함이 지극하면 신명도 감동하고 병마도 물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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