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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둘째주 일요법회(4/14,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4-14 15:03 조회5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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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봄날입니다. 많은 분들이 꽃놀이를 갔는데 그래도 법회에 참석해 주신 신도님들 감사합니다. 오늘은 봉은사 교무국장이신 석두스님께서 "길 없는 길을 가다"란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신심명에 있는 6번째 글인 

지동귀지(止動歸止), 지갱미동(止更彌動),유체양변(唯滯兩邊),영지일종(寧知一種)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면서 중생들은 곤란이 있어야 마음을 멈춘다시며,곤란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하십니다. 추함속에서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속에서 추함을 볼수 있어야 한쪽으로 치우쳐 바라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소리없는 메아리도 들을수 있어야 길 없는 길도 보인다고 하십니다. 그럴때까지 정진, 또 정진 해 봅시다. 

 

석두스님 법문영상보기 (아래를 클릭해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1UkPe0zn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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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40414_151523155.jpg

 - 발원문 낭독 장홍매(보리안) 보살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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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전 법등거사님, ppt 원불성보살님, 사회 지승거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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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양당번 문수2구 - 

 

 

길 없는 길을 가다

 

봉은사 교무국장 석두스님

 

止動歸止(지동귀지) - 움직임이 그쳐서 멈추게 되고

止更彌動(지갱미동) -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이게 되면

唯滯兩邊(유체양변) - 오직 양쪽 끝에 막혀서

寧知一種(영지일종) - 어떻게 한 가지인줄 알겠는가

 

止動(지동)’은 본래 우리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행복과 슬픔,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의 마음 등,,,,

지동은 중생들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심리적인 모든 보통의 감정들을 상징합니다. 인간적인 삶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괴로움을 불러오는 감정적 판단들이기도 합니다.

괴로움의 거대한 파도에 휩싸였다가 문득 한 생각이 일어나고, 인생을 관조하듯 모든 것은 덧없다고 말하면서 세상을 등지고 나와는 상관없는 듯이 행동하곤 합니다.

그 또한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지속성이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경험이 좋은 스승이 되기 위해서는 체화된 공부가 필요합니다.

변화시킬 수 있는 인연은 만났지만, 달콤한 꿀에 취한 위기의 나그네처럼

그 동안 힘들었던 경험은 까마득히 잊고, 다시금 열심히 꿀의 달콤함에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일러止更彌動(지갱미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멈춘 듯 했으나 다시금 움직임이 있다고 하는 말이 이와같은 뜻입니다.

 

應無所住而生其心(응무소주이생기심)’- 응당 주한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좋은 의도이든 나쁜 의도이든 의도는 과보를 도출합니다.

여기서 과보란 의도자의 심정적인 상태가 외부의 결과에 의해서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준다는 생각 없이 주게 되면 주는 자에게는 과보가 발생할 수 없습니다.

주는 자에게 있어 주는 감정이든 물건이든 모든 것은 햇빛 아래 이슬처럼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있으나 그림자는 없습니다.

공부인의 마음씀이란 이러해야 합니다.

 

움직임 가운데 멈춤이 있어야 하고, 멈춘 가운데 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멈추고 움직임은 현상적 세계의 모습입니다.

이 현상적 세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중생이지만

현상 너머의 것을 볼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것이 공부인의 자세인 것입니다.

 

唯滯兩邊(유체양변)’

 

여기서 양변이란 멈추고 움직임을 말합니다.

모든 사물은 이 두 가지 양태로 현실계에 존재합니다.

우리들의 마음 또한 두 가지의 감정 형태로 도출되어 나타납니다.

좋은 감정이 오면 싫음이 분명 조만간 다가옴을 알아야 합니다.

싫은 감정이 나타나면 분명 조만간 좋은 마음이 나타남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 또한 분명 훌륭한 공부이긴 하지만 한 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무심하게 흘러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양변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을 키워야 희노애락에 걸리지 않는 대자유인이 될 수 있게 됩니다.

 

寧知一種(영지일종)’

 

가고 옴에 구애되지 않는다면 무색무취의 마음을 쓸 수 있습니다.

가도 한 마음이요, 와도 한 마음입니다.

내 마음자리는 간 적도 없고, 온 적도 없습니다.

 

석녀(石女)가 애를 낳고

 

소리없는 메아리가 들리고 길 없는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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