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11월 초하루법회 봉행(12/13,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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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1월 초하루법회가 80명이 훌쩍 넘는 신도님들과 함께 대웅전에서 봉행 되었습니다.
천수경과 상단불공, 신중단 퇴공, 반야심경을 거쳐 큰스님께서 "최상의 행복이란"초하루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을 가까이하지말고, 현명한 사람들과 친교를 맺는것,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을 존경하는것등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부처님의 경전을 설명해 주십니다. 작은것에 만족할줄알고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는것도 최상의 행복이라고 하시네요. 큰스님은 법문때마다 항상 공동체적인 삶을 중요시하시며 강조 하십니다. 현대사회에서 핑계만 있으면 나가려고 하는 가족들을 한번더 생각하게 됩니다.
최상의 행복이란
벽암 지홍스님
인간은 누구나 매순간 행복하기를 원하며 또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승속을 떠나 부처님께 귀의한 우리 불제자들은 영원한 행복의 세계, 즉 해탈을 위해 끊임없이 수행정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재가자로서 세속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이러한 궁극적인 행복, 정신적인 완성을 향한 노력과 함께 물질생활의 안정, 인간관계 속에서 이루는 평화 등, 다양한 요건들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진정으로 보람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성의 기원정사에 머물고 계셨다. 어느 날 밤 한 신이 기원정사 전체를 비추면서 나타났다. 신은 부처님께 가까이 와서 인사를 한 다음 물었다.
“저 수많은 신들과 인간들은 축복을 원하며 또 행복을 갈망하고 있다. 고타마여 최상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않고 현명한 사람들과 친교를 맺는 것, 그리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 알맞은 장소에 살며 좋은 일을 앞질러 하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의 마음을 갈고 닦기 위해 온 힘을 쏟는 것, 부모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들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 형편에 따라 남을 도우며 올바르게 사는 것, 친지들을 아끼고 보호하며 남에게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 죄악과는 영원히 결별하며 술을 절제하고 덕을 쌓기에 소홀히 하지 않는 것, 존경과 겸손, 만족과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 그리고 알맞는 때에 진리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니라.” (숫타니파타)
사람들은 스스로가 행복과 불행을 만들어내는 주체임을 잊은 채 행복하기만을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위 경(經)의 가르침에서도 볼 수 있듯이 행복은 자신을 닦고 주변을 살피며, 또 오계(五戒)지켜 절제된 생활을 하는 등, 스스로 노력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만족된 느낌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세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모든 행위는 고통의 원인이 되는 탐(貪)․진(瞋)․치(痴) 삼독심을 없애가는 수행의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르침(法)에 따라 스스로 올바르게 생활하는 중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물질적 부를 모으고 지니는 즐거움, 물질적 부를 누리는 즐거움, 빚이 없는 즐거움, 비난받을 일이 없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안정된 생활과 평화로운 인간관계가 세속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의 근간(根幹)이 됨을 우리는 세상살이 경험으로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행복을 일구고, 또 느끼며 살아가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물질적 부를 모으고 지니는, 그리고 누리는 즐거움을 말씀하십니다.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직업이 있지만 어떠한 직업이든 그 직업이 인간 생활에 이로운 것이라면 귀천(貴賤)은 없습니다. 다만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해서 그에 상당하는 대가로 안정된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거기다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가지고 성취감을 느끼면서 일할 수 있다면 일하는 것 자체도 즐거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확천금을 노리고 허황된 일을 도모한다든가 남을 속이고 일시에 많은 돈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등, 불성실한 삶의 태도는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도 불행하게 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성실하게 일하고, 그 노력의 대가를 조금씩 쌓아나가는 재산이야말로 정말로 소중하고, 그리고 진정한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또 욕심을 절제하여 스스로 모은 재산에 만족할 줄 알 때 기쁨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자신의 피와 땀이 배인 재산은 절대 일시적인 쾌락, 또 체면치레나 과시를 위해 쓰여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복권이 당첨되었다든가, 유산상속을 받았다든가 하는 자신의 노력이 담겨있지 않은 재산은 함부로 쓰여지기 마련입니다. 과다한 소비 행위는 재산의 탕진은 차치하더라도 결국은 심한 정신적인 황폐감까지 맛보게 합니다. 또 세계적으로 환경오염이 심각한 요즈음, 지나친 소비는 사회악(社會惡)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건강한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할 자연환경이 쓰레기와 오염물질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소비는 미덕이 아닙니다. 소비는 절제되어야 합니다. 모든 재화는 꼭 필요한 부분에 필요한 만큼 적절하게, 즉 분수에 맞게 소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당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검소한 소비생활로 모은 재화가 사랑하는 가족과 정말로 필요한 곳에 소중하게 쓰여질 때 누리는 기쁨이 세상 사람들의 진정한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적 부를 지니고 누리는 즐거움은 소유한 재산의 다소(多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아는 절제된 마음과 주변 사람들과 나누며 살고자 하는 열려있는 마음 안에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빚의 부담이 없는, 그리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즐거움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요즈음 사람들은 소비를 부추기는 선정적인 광고들, 하루가 다르게 모양과 기능을 달리하는 첨단 제품들, 또 당장 돈이 없어도 구입 가능한 신용카드들이 난무하는 소비 경제 구조속에 살고 있습니다. 자칫 정신차리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빚더미에 올라앉을지도 모릅니다. 사업을 위해 빚을 썼다 해도 부담이 될 텐데, 이러한 소비만을 위해서 빚을 쓰는 상황으로 경제생활을 이끌어간다면 개인은 물론 가정을 파산으로 몰고 가는 지름길이 됩니다. 또 우리 주변에는 내 돈 내가 쓰는데 어떠냐는 식으로 수십억짜리 집에서 외국산 가구들에 둘러싸여 수천만원이 넘는 옷들을 걸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생계를 위해 힘든 노동을 하루도 쉴 수 없는 절박한 삶이 있음을 잊는 아주 이기적인 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소비는 같이 사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또 자신의 생활 규모에 맞게 해야합니다. 그래야만 비난받을 일이 없고 빚의 부담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진리 속에 살게 한 부처님을 비롯하여 부모, 스승, 자연 등 수많은 존재들의 은혜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은혜를 깨닫고 보답하고자 노력하며 사는 것, 또한 빚의 부담이 없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인간다운 삶을 사는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부모, 자식, 아내, 친척, 이웃 등 모든 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오계(不殺生, 不偸盜, 不邪淫, 不妄語, 不飮酒)를 지켜 자신의 생활을 청정히 하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빚의 부담이 없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평화로운 인간관계, 즉 행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생활 속에서 진리(佛法)가 실현되는 모습이며, 또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자칫 물질에 매몰되기 쉬운 요즈음 불자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네가지의 즐거움은 물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수행(修行)의 삶으로 복덕(福德)을 쌓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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