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1월 둘째주 일요법회 및 성도재일 기념법회(1/14,일)
본문
오늘은 1월 둘째주 일요법회일로 성도재일 기념법회랑 겸해서 봉행 되었습니다. 꽤 많은 불자님들이 함께한 법회입니다. 평소에 하던 바라밀 정근이 석가모니불정근으로, 일요법회 발원문에서 성도재일 발원문으로 바뀌어 진행됩니다. 봉은사 교무국장이신 석두스님께서 쾌락주의와 고행주의의 양극단을 떠나 중도로서 깨달음을 얻으신 날 음력12월8일을 기념하는 성도재일을 맞이하여 법문 해 주십니다. 법문 말미에 법륜스님의 다짐글을 일러 주십니다.
1.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 2.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3.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는 사람이 되자 4. 도움받기 보다는 도움주는 사람이 되자
5. 의지하기 보다는 의지처가 되는 사람이 되자 6. 화내지 않는 사람이 되자
7.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자 8. 좋은 일은 손해를 보더라도 기꺼이 하는 사람이 되자
9. 실패가 성공의 길이 되는 사람이 되자 10. 모르면 묻고 틀리면 고치고 잘못하면 뉘우치는 사람이 되자
올 한해 우리도 이런삶이 되도록 노력하는 불자가 됩시다.
- 성도재일 발원문 무량 박상돈 거사님 -
- 신입법우와의 차담 -
- 집전 법등 김재원 거사님 -
성도재일
봉은사 교무국장 석두스님
성도재일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으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럼 가장 궁금한 것은 부처님의 깨달은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부처님께서 그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이 출가하신 그 당시 인도의 수행법은 선정주의와 고행주의로 대표됩니다. 부처님께서도 물론 이 두 수행법의 전통에 따라 깨달음을 추구하십니다.
하지만 선정주의도 고행주의도 부처님에게 만족할 것들을 가져다주지 못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중도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완성할 수 있게 됩니다. 부처님의 수행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고뇌하는 청년 싯달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부귀영화를 버리고 오로지 진리를 찾아 나선 29살의 청년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됩니다. 선정주의 수행자 스승에게서는 배우는 동안에 누구보다 빠르게 스승의 경지까지 삼매를 체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또한 삼매의 순간에만 희열을 느낄 뿐,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탐진치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진리의 진정한 모습을 추구한 청년 싯달타에게 선정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깨달음은 반쪽짜리 깨달음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행주의 수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행주의 수행법도 역시 반쪽짜리 수행법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정수행법이 추구하여 얻을 수 있는 내용 또한 선정의 쾌락이고, 고행수행법이 추구하여 얻은 수행의 내용 또한 욕망의 억제에서 오는 한 순간의 욕망억제의 기쁨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수행법을 가지고는 자신이 얻고자 하는 마음의 평화와 끊임없는 안락은 결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제3의 길을 고민하기 시작하십니다.
결국 부처님께서는 쾌락주의와 고행주의의 양극단을 떠나 제3의 길인 중도를 발견하시게 됩니다.
중도란 욕망을 따르지도 않고, 욕망을 억제하지도 않고, 다만 욕망이 욕망인줄 알아차리는 수행에서 얻어지는 안목입니다.
욕망을 부정하지도 않고, 욕망의 뒤에 숨어서 아닌 체 하지도 않고, 욕망의 민낯을 마주하고 그 놈의 실체를 인정하고 끝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이 중도의 수행법입니다.
욕망을 부정하는 자는 욕망은 더럽고 불순한 것이라는 잣대가 무의식중에 작용하는 심리상태에 놓인 것입니다. 인식의 과정이 한 쪽으로 치우친 결과입니다. 또한 욕망을 있는 그대로 따르는 자에게 안락과 안정은 있을 수 없게 됩니다. 욕망을 부정도 긍정도 하려하지 않는 태도가 중도입니다.
마왕의 달콤한 유혹도 부처님에게는 끝이 보이는 길이며 안개와 이슬과 같은 길이었기에 단호하게 거절한 것입니다. 비로소 중도의 안목으로 세상을 조망하는 제3의 눈을 얻게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내면의 욕망과 성냄,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후 몸과 마음은 안락해 졌으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하만물은 다 서로 연관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자, 발에 밟히는 모래, 눈에 보이는 나뭇잎, 피부를 스치는 바람, 손에 닿는 차가운 물, 그 어떤 것도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나와 연관되어 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라고 특정할 것도 없고, 나와 자연의 합일 속에서 안온함을 느끼게 됩니다.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7일동안 법열을 누렸습니다.
마음이 들뜨는 즐거움이 아니라 고요하고 적정한 즐거움이었습니다.
12연기법을 통해 존재의 실상을 알게 되었고,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지 않고도 알게 되었고, 듣지 못했던 것을 듣지 않아도 듣게 되었으며, 마음의 작용을 여실히 알게 되었고, 어떤 행동의 내용이 어떤 과보로 돌아오게 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중생들이 스스로의 올가미 속에서 고통받는 모습에 연민을 느끼시고 전법의 길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부처님의 성도재일을 맞이하여 세상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눈을 떠서 행복과 안락의 길을 찾기를 발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