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넷째주 일요법회(7/23,일)
본문
며칠간 내리쬐는 햇살로 무더웠는데 오늘은 하늘에서 비가 내립니다. 또 다시 장마가 시작 되려나보네요. 7월 넷째주 일요법회로 불광사 주지 동명스님의 "용서는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란 제목의 법문을 통해서 첫째, 남의 실수에 대해서는 관대해야 하며, 둘째, 상대가 술수를 부리는 것이 괘씸하더라도 때로는 모른 척하고 저주여야 하고, 셋째,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씀 주셨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드라도 상대방에게는 너그러워야 하며 상대의 실수를 용서하는게 결국 내 마음이 편안해 지는법이니 결국 용서는 자기 지신을 위한것이 된다는 말씀 공감 됩니다. 너그러운 마음을 유지하려면 기도 열심히 하셔서 늘상 평정한 마음 유지 하는 것이겠지요.
용서는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불광사 주지 동명스님
살다 보면 용서하기 힘든 일이 생기게 됩니다. 그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부글부글 끓고, 그 사람만 생각해도 분노가 치밀어오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런 마음을 경계하셨습니다.
모든 악 가운데 최고의 악은/ 미워하고 성내는 것,
성낼 상황에서도 능히 성내지 않는 것/ 다툼을 이기는 최상의 무기여라.
- 장아함경- 「세기경 전투품」
미워하거나 성내지 않기 위해서는 용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용서에 관해 우리가 명심해야 할 몇 가지를 생각해봅니다.
첫째, 남의 실수에 대해서는 관대해야 합니다.
부처님 시대에 장님 아라한 짝쿠빨라 스님이 경행하다가 벌레들을 밟았습니다. 이를 보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알렸습니다.부처님께서는 그때 의도적으로 살생하지 않았다면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해스님도 자신의 잘못은 용서하지 않더라도 남의 과오는 용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과오는 용서해야 하지만/ 자신의 과오는 용서해선 안 되며,
자신이 겪은 곤욕은 참아야 하지만/ 남이 겪은 곤욕은 참지 말아야 한다.”(만해스님의 채근담에서)
둘째, 상대가 술수를 부리는 것이 괘씸하더라도 때로는 모른 척하고 져주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짝쿠빨라 스님의 전생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짝쿠빨라 스님은 전생에 유명한 의사였습니다. 어느 날 의사에게 한 여인이 찾아와서 자신의 눈이 점점 멀어간다고 제발 눈 좀 뜨게 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제 눈을 뜨게 해주시면 저는 물론이고 제 자식들까지 당신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이 말씀을 드릴 때만 해도 여인은 눈만 뜨게 된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지요.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약속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명의였던지 여인의 눈은 점점 호전되어 정상에 가까워졌습니다. 여인은 의사의 노예가 되기 싫었습니다. 그녀는 의사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웬일인지 눈이 다시 나빠져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짓말을 한 것은 엄청난 실수였습니다. 그냥 큰 보배를 드릴 테니 노예가 되는 것만은 봐달라고 부탁했어야 했었지요.
의사는 여인이 좋아지고 있으면서도 거짓말하고 있음이 괘씸해서 오히려 눈이 멀게 되는 약을 주었고, 그 여인은 결국 고칠 수 없는 장님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과보로 짝쿠빨라 스님은 여러 생을 장님으로 태어났고, 이번 생애에 드디어 부처님을 만나 그 과보를 끝내게 된 것입니다. 의사가 자비심을 발휘하여 여인의 술수를 그냥 용서했다면, 세세생생 장님이 되는 과보는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짝쿠빨라 스님의 전생 이야기를 마치시면서 비구들에게 게송을 읊어주셨습니다.
“생각이 모든 일을 앞서가고/ 생각이 모든 일의 주인이며
모든 일은 생각으로 지어진다./ 만약 사악한 생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반드시 고통이 그를 뒤따르리,/ 마치 수레가 황소를 뒤따르듯이.”
- 법구경 제1송 -
셋째,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상대를 위해 용서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달라이 라마 존자는 말씀하십니다.
“만일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상처를 준 사람에게 미움이나 나쁜 감정을 키워나간다면, 나 자신의 마음의 평화만 깨어질 뿐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용서한다면, 내 마음은 그 즉시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용서해야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달라이 라마, 용서)
있느니 없느니 다툼으로 쉬지 못하니
윤회하는 생사가 언제나 다할 것인가
생사는 끝없이 업의 바다로 흐른다
有無爭戰未能休 輪廻生死何時盡 生死無邊業海流.
-나옹혜근(懶翁惠勤, 1320~1376), 「강에는 피만 가득 빠르게 흐르리라(血滿江河急急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