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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둘째주 일요법회(5/11,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5-11 15:57 조회3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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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둘째주 일요법회가 5월11일(일) 하안거기도 입재법회를 겸해 봉행되었습니다. 

스님들의 인례로 천수경을 시작으로 상단불공의식을 여법하게 봉행합니다. 

이날 법회의 법문은 총무원 총무국장으로 계신 석두스님께서 소중한 말씀 이어주십니다. 

 

석두스님 법문은 금강정사 유튜브 채널에서 함께하실수 있습니다. 

https://youtu.be/hzNWerXzSwc

 

법회일에 한해 운영되는 봉고차량은 한가히 일주문을 통과하고,

공양실 문수2구 식구들의 공양준비는 언제나 즐거운 소리가 가득합니다. 

도량에서는 차광막 철거 운력으로 이리저리 분주히 우마가 옮겨지고 

석불전 앞에선 신도님들의 정성스레 기도축원 모습은 간절함이 느껴지네요...~~~~

 

법회의 원만봉행을 위해 수고해 주신 모든분들께 감사와 찬탄의 박수를 올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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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은 보이는 대로, 가는 것은 가는 대로


                                              총무원 총무국장 석두스님


소견호의(小見狐疑)하여 전급전지(轉急轉遲)로다.

집지실도(執之失度)라 필입사로(必入邪路)요

‘좁은 소견과 여우같은 의심을 하여 오히려 급하고 오히려 늦는구나.

집착하면 정도에서 벗어남이라, 반드시 삿된 길로 들어섬이라.’


방지자연(放之自然)이라 체무거주(體無去住)라

임성합도(任性合道)하여 소요절뇌(逍遙絶惱)하고

‘자연스레 그것을 놓음이라. 체성은 본래 없어 가고 머무름이 없어라.

성품에 맡기어 도에 합치하니 유유자적하여 번뇌가 끓어지고’


‘작은 소견으로 여우같은 의심을 낸다’ 

‘작은 소견’은 마음 공부하는 이가 자기가 갖고 있는 기존의 생각을 내려놓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작은 소견은 다른 이름으로 ‘중생심’을 말합니다.

‘중생심’은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나옵니다. 반대로 ‘보살심’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큰 공부는 큰 소견으로 완성됩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내 아만을 내려놓고, 내가 더 훌륭하다는 생각을 내려놓을 때,

‘큰 소견’이 만들어 집니다. 

채우고 비우지 않으면 ‘작은 소견’이요. 

덜어내고 비우면 ‘큰 소견’이라 합니다.

빨리 깨닫고자 하는 것은 좋은 욕심이지만, 급하고 서두르게 됩니다.

서두르면 더디 오고, 인연의 때를 기다리면 느릴 수도 있지만 반드시 만나게 됩니다. 

서두르거나 앞서려 하면 바른 길을 벗어나 삿된 길로 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무엇이든 집착하는 순간 도(道)와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옳다는 것도 집착이요, 그르다고 하는 것도 집착입니다.

시절 인연이 도래하지 않으면 옳은 것도 그른 것이 될 수 있고,

그른 것도 옳은 것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매 순간에 깨어 있어서 흐르는 것은 흐르는 대로, 멈춘 것은 멈춘 대로 

알고 있으면 됩니다.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은 본래 인연대로 완벽하며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나의 한 생각이 일어나면서, 본래의 것들은 자리를 잃고 자기의 생각대로 인연을 조작하면서 어그러지기 시작합니다.

‘놓으면 잡히고, 잡으려면 놓치게 된다.’

생각, 사람, 의도, 인연,... 이 모든 것에서 우리가 살면서 후회되는 모든 순간을 돌이켜보면, 잡으려 했고, 놓아버리지 못했기 때문임을 알게 됩니다.  


체성(體性)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은 인연 따라 나타나고, 인연 따라 사라지는 현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주위 온도가 낮으면 물은 얼음으로 나타나고, 주위 온도가 높으면 물은 수증기로 나타납니다. 인연의 때를 알고, 인연을 알아 볼 수 있는 안목이 지혜입니다.

얼음을 얻기 위해서는 추운 곳으로 갈 줄은 알면서도,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놓을 줄은 모릅니다. 어디 사람 뿐 이겠습니까?


성품에 맡긴다는 것은 나의 의도와 생각을 최소한으로 개입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은 흐르는 것이고, 사람의 마음은 변하는 것입니다.

시기의 문제와 개인의 품성, 깊이의 문제이지만, 그 사실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붙잡으려 하면 나도 내 생각에 붙잡히게 됩니다. 그 생각이 강하면 강할수록

나 스스로가 더욱 자기 자신을 옭아매게 됩니다.

대상을 구속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자신을 구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려놓으면, 내 생각도 나도 자유롭습니다.

한가롭게 소요하며 자유롭게 사색하게 됩니다. 

소요하게 되면, 나도 해방되고 남도 해방됩니다. 

‘소요’란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거리를 두면 가까이에서는 보이지 않던

전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지고 싶고, 보고 싶고, 잡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정 기간 거리를 두고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 때는 그렇게 열망하던 그 큰마음이 아주 작고 하찮은 마음으로 느껴지실 것입니다.

 

번뇌가 끊어졌다는 것은 비로소 내 개인적인 생각을 내려놓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의도가 끊어지게 되면, 생각도 내려놓게 되고, 욕심도 줄게 되어 있습니다. 

선한 의도이든, 악한 의도이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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