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둘째주 일요법회(7/9,일)
본문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건지 억수 같이 쏟아지는 둘째주 일요일 입니다.
그래도 법당안에는 70여분이 모여 예불과 반야심경 청법가를 부르며 봉은사 교무국장이신 석두스님의 법문을 청합니다.
법상에 오르신 석두스님의 법문제목이 의미 심장합니다. "선지식(善知識)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일련의 종단스님의 불미스러운 일을 두고 하시는 법문인거 같습니다. 오욕락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선지식을 제대로 알수 없으며, 겉모습만 보거나 학벌에 현혹되어 줄서는것도 경계해야하고, 오랫동안 같이 살아보고 세심하게 살펴보며 통찰력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계율만 잘 지켜도 부자가 될수 있다라는 말씀도 머리에 쏙 들어 옵니다. 오늘의 법문 잘 새기며 계율 잘 지키는 불자가 되도록 합시다. 그래서 우리들도 부자가 되어봅시다.
-집전 법등거사님, ppt 봉경덕, 발원문 반야지, 사회도안거사님 -
선지식(善知識)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봉은사 교무국장 석두스님
한 인간의 일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만남의 종말은 죽음을 맞이하여서만 끝이 난다. 그만큼 중요하다.
마음공부를 지어감에 있어 좋은 선지식을 알아보고 인도를 받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눈이 밝지 못한 중생들은 제한적인 정보로 인해 그런
기회가 많지 않다.
요즘에는 매스컴의 발달로 간접적인 만남이 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더욱 제한적이다.
한때 대중들의 절대적 호응과 지지를 받던 많은 스님들이 지금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아직 몇몇의 스님들이 있지만 왠지 불안해 보인다.
보여지는 것과 가지고 있는 내적 힘의 불일치가 발생할 때,
대중들은 가차 없이 돌아선다. 그래서 대중들의 시선은 냉혹한 것이다.
포교의 일선에 서 있는 많은 스님들이 그러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신도들의 입장에서 좋은 스님의 인도를 받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대중적인 유명세나 인기가 아니라, 스승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좋은 수행자를 알아볼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 있을까?
쌍윳다니까야 결발수행자편에는 파사익왕과 붓다의 대화 속에 그런 대목을 찾을 수 있다.
“대왕이시여, 계행(戒行)은 잠시가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 살아보고, 대충 보지 않고 세심하게 살펴서, 어리석지 않고 통찰력을 가지고 판단해야 합니다.
대왕이시여, 순수함은 잠시가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 일해 보고, 대충 보지 않고 세심하게 살펴서, 어리석지 않고 통찰력을 가지고 판단해야 합니다.
대왕이시여, 확고함은 잠시가 아니라 오랜 시간 불행한 처지에서, 대충 보지 않고 세심하게 살펴서, 어리석지 않고 통찰력을 가지고 판단해야 합니다.
대왕이시여, 지혜는 잠시가 아니라 오랜 시간 대화해보고, 대충 보지 않고 세심하게 살펴서, 어리석지 않고 통찰력을 가지고 판단해야 합니다.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세존이시여, 염탐하고 정탐하는 제 신하들이 영토를 염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먼저 염탐하는 것을 저는 나중에 결정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들은 지금 흙먼지를 털고, 목욕하고, 향유를 바르고,
머리와 수염을 다듬고, 흰 옷을 입고, 오욕락을 구족하여 즐길 것입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그 말의 의미를 아시고 그 때 이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겉모습으로는 사람을 잘 알 수 없다네.
잠깐 보고 믿어서는 안 된다네.
잘 수련된 모습을 하고
수련되지 않는 자들이 세상을 돌아다닌다네.
가짜 진흙 귀걸이나
반 푼도 안 되는 도금한 놋쇠 같은
허세로 위장한 사람들이 세상을 돌아다닌다네.
겉은 빛이 나지만 속은 더럽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