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호법법회(9/7,수)
본문
온 나라를 잠못들게 했던 태풍11호 힌남도가 남쪽지방을 휩쓸고 지나간 다음날인 오늘의 광명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태풍이 무색할 정도로 하늘이 맑고 높네요.
오늘도 어김없이 원로 보살님들 중심으로 동명스님을 모시고 호법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화합은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라는 법문중 공동체의 삶이 항상 구성원모두가 긍정적인 마음과, 사랑스러운 눈빛, 자비로운 말투와 마음,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이 많이 가슴에 울림을 주는 법회 인거 같습니다.이렇게 좋은 법문 더 많은 대중이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동명스님 법문 오디오 듣기 : https://youtu.be/crkv8tjg7AI
- 상단불공을 올립니다 -
- 상단불공 -
- 반야심경 봉독 -
- 지극한 마음으로 절을 올립니다 -
- 바라밀 염송/ 마하반야바라밀~~ -
화합은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동명스님(금강정사 총무)
속이고 간사하고 거짓말 많고/ 실천하지 않았으면서 실천했다 말하며
남이 보는 때에만 깨끗한 행 갖추거든/ 물리쳐 그를 멀리 떠나라//
맑고 깨끗한 이와/ 언제나 마땅히 서로 화합하여라
화합은 진실로 안온을 얻게 하나니/ 화합하면 마침내 괴로움이 끝나느니라
-[중아함경] 2-122 「첨파경(瞻波經)」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장 중점적으로 강조했던 것은 화합입니다. 때로는 화합보다는 바른 길을 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위 게송에서도 부처님께서 못된 행위를 하는 이를 단단히 고쳐주라고 하지 않았음을 상기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는 화합이야말로 최상의 ‘바른 길’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나디까 마을의 긴자까와사타에 계실 때, 아누룻다, 난디야, 낌빌라 등 세 제자가 고싱가살라 숲의 공원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세 제자가 함께 기거하는 숲속으로 갔습니다. 부처님께서 오시자 제자들 중 한 사람은 발우와 가사를 받고 한 사람은 깔개를 깔고 한 사람은 발 씻을 물을 준비했습니다. 세존께서는 깔개 위에 앉아서 두 발을 씻으셨습니다. 발을 씻으신 다음 부처님께서는 한쪽으로 물러앉은 아누룻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누룻다여, 그대들은 서로 화합하고 서로 감사하고 다투지 않고 우유와 물처럼 융화하며 서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지내기를 바란다.”
아누룻다가 제자들이 서로 화합하면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하자, 부처님께서는 아누룻다에게 ‘어떻게’ 화합하면서 살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아누룻다가 대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늘 ‘내가 이와 같이 청정한 삶의 벗들과 함께 사는 것은 나에게 참으로 이로우며 참으로 유익한 일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기 존자들에게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자비로운 신체적 행위를 일으키며,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자비로운 언어적 행위를 일으키며,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자비로운 정신적 행위를 일으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내가 나의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르면 어떨까?’라고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제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랐습니다. 저희들의 몸은 여러 가지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몸은 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 - [맛지마 니까야] 「고싱가살라 짧은 경」(M31)
아누룻다 존자의 대답 속에 대중들이 서로 화합하는 방법이 곡진하게 들어 있습니다. 이를 다시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내가 속해 있는 단체나 구성원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속해 있는 이 단체는 서로를 사랑하는 자비로운 사람들이 만들었으며, 이 단체는 나에게 유익하며, 그 구성원들도 나에게 도움이 된다’라는 마음입니다.
둘째, 항상 서로 자비로운 몸짓으로 대해야 합니다.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항상 공손한 태도로 구성원들을 대하며, 거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겸손한 자세를 유지한다면, 나는 대중들과 화합할 수 있고, 대중들은 항상 나를 따라서 서로 화합하게 됩니다.
셋째, 항상 자비로운 말투로 부드럽게 말하는 것입니다. 친하다고 해서 농담으로라도 거칠게 말하는 사람들의 단체는 처음에는 화합했다가도 나중에는 화합이 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마음은 기분 좋을 때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너그럽다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는 가벼운 농담에도 발끈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항상 자비로운 말투로 부드럽게 말한다면 그 단체는 화합합니다.
넷째, 항상 자비로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겉으로만, 즉 말이나 태도로만 공손해서는 안 되며, 그 마음바탕이 자비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 꾸지람을 하거나 비판할 때조차도 자비로운 마음을 바탕으로 한다면, 그 꾸지람과 비판이 상대방에게 오히려 도움이 되어 화합이 깨지지 않습니다.
다섯째,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상(我想, 我相)을 버리는 것’입니다. 아상은 ‘나와 너를 분별하는 상’입니다.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너라면 나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텐데, 그렇게 하는 너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라고 판단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하기야 너와 나는 생각이 다를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을 인정해야 화합할 수 있습니다.
결국 대중들과의 화합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먼저 ‘내가 이와 같이 청정한 삶의 벗들과 함께 사는 것은 참으로 나에게 이로우며 참으로 나에게 유익한 일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화합은 바로 나 자신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하는 것으로부터, 곧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는 동료들에 대하여 자비롭게 행동하며, 자비롭게 말하며, 자비로운 마음을 갖습니다. 또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아상을 버리는 것’이 추가됩니다. 모두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주지스님께서는 저희 상좌들에게 늘 화합을 강조하십니다. 작년 9월 16일, 건강이 회복되지 않으신 가운데 스님께서는 저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반야이다. 반야는 중도이고 화합이다. 화합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라.” 우리 금강정사에는 앞으로 중차대한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바로 사부대중 공동체를 일구어나가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화합입니다. 우리 함께 서로 감사하고 우유와 물처럼 융화하며 사랑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지내기를 바랍니다.
남을 헐뜯으면 남 또한 나를 헐뜯고/ 상대를 잊으면 상대 또한 나를 잊네.
내가 잘해주면 남 또한 내게 잘하고/ 상대에게 억지 부리면 상대도 억지 부리리.
毁人人亦毁 忘物物俱忘 我善人人善 我强物物强.
-괄허취여(括虛取如, 1720~1789), 「어떤 이로 인해 느낀 바 있어(因人述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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