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호법법회(7/6,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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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정사 소식

7월 호법법회(7/6,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07-06 14:37 조회1,1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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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의 무더운 습기와 한여름의 후덥지근함이 도량의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7월의 첫째주 수요일, 부처님의 정법이 영원히 머물며 겨레와 국토를 진리 광명으로 빛낼 것을 서원하며 7월 호법법회를 봉행합니다.

자애명상으로 시작을 하신 동명스님께서 [그 누구도 아닌나 자신을 위해 용서하겠습니다.]라는 주제로 나자신을 위한 진정한 용서의 의미에 대하여 법문해 주셨습니다.

법회에 참석하지 못하신 불자님께서는 유튜브 온라인 동영상 법문을 통하여 용서에 대하여 함께 되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동명스님의 온라인 동영상 법문 : https://youtu.be/-Ue90-Drtt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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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명스님의 7월 호법법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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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처님께 예경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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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가 함께 한마음으로 올리는 정근 "마하반야바라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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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벽암 지홍스님의 축원이 대웅전안을 울려퍼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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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명스님의 법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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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애명상으로 시작된 법문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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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심공양봉사 수도권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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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용서하겠습니다.


동명스님

 

그대들이여, 마땅히 성내지 말라./ 누가 내게 성내어도 성냄으로 갚지 말라.
악에 대해서 악한 마음 내지 말고/ 마땅히 교만한 맘 부수어야 하느니.//
성내지 않고 해치지도 않으면/ 그야말로 성현이라 하리.
누가 악한 죄 지으며 성나게 하더라도/ 바위나 산처럼 흔들리지 말라.
- [잡아함경] 1107번 「야차경」

 
남편이 죽고 외아들을 키우는 이신애(전도연 분)는 남편을 꼭 닮은 아들을 위해 남편의 고향인 밀양에 정착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오직 아들을 위해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유괴당해 죽고 맙니다. 유괴범은 곧 잡혀서 사건은 일단락되지만, 이신애는 절망의 나날을 보냅니다.

 


절망을 이기기 위해 이신애는 교회에 다니게 되고, 신앙의 힘으로 유괴범을 용서하기로 합니다. 용서하는 마음으로 감옥에 있는 유괴범을 찾아간 이신애는 깜짝 놀랍니다. 유괴범이 너무나도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입니다. 유괴범은 자신이 개신교 신자가 되어 신에게 구원받았다고 말합니다. 그 순간 용서하려던 이신애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고 맙니다. ‘용서해야 할 이는 피해자인 바로 나인데, 누가 누구 맘대로 용서한단 말인가!’ 이신애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영화 「밀양」(이창동 감독)의 줄거리입니다. 이신애의 고통이 충분히 이해가 가시지요. 또 다른 영화 「오늘」(이정향 감독)에서 다큐멘터리 감독 다혜는 자신의 생일날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로 약혼자를 잃었지만, 한 수녀의 가르침에 따라 용서하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가해자를 용서합니다. 1년 후 ‘용서’라는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가해자의 소식을 듣게 되고, 아무 거리낌 없이 살고 있는 가해자의 모습에 용서하는 마음을 거두게 됩니다.

 
“용서해준 것이 죽도록 후회됩니다.” 이신애와 다혜가 공통적으로 가진 마음입니다. 정말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지요. 이 정도까지는 아닐 텐데도 템플스테이 때 “이번에는 내가 미워하는 사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떠올리고, 그 미워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자애의 마음을 보냅니다”라고 말하면,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호소하는 참가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죽인 원수, 약혼자를 죽인 원수를 어찌 쉽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외도를 믿는 집안에 시집 간 웃따라는 남편을 시봉하느라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을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생 시리마를 불러 남편을 시봉하게 하고, 자신은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시리마는 남편과 사이가 좋은 웃따라에 대해 심한 질투심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웃따라에게 뜨거운 기름을 끼얹어버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웃따라가 다가오자 시리마는 국자에 뜨거운 기름을 가득 떴습니다.

 


이 모습을 본 웃따라는 시리마가 자신을 질투하여 뜨거운 기름을 끼얹으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챕니다. 그럼에도 웃따라는 시리마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시리마는 나를 도와준 사람이다. 이 세상을 둘러보아도 시리마가 나에게 베풀어준 친절에 비교할 만한 것은 드물다. 나는 시리마의 도움으로 부처님과 비구스님들께 공양할 수 있게 되었고, 또 법문을 들을 수도 있게 된 것 아닌가. 만약 그녀에 대해 털끝만큼이라도 성내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나는 그 기름에 타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내 마음에 그녀에 대한 진심이 전혀 없이 자비심만 있다면 나는 기름을 뒤집어쓰고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시리마가 웃따라에게 마치 실수한 것처럼 기름을 확 끼얹었지만, 그 기름은 깨끗한 물이 되어 웃따라를 시원하게 해줄 뿐이었습니다. 시리마가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끓는 기름을 끼얹었습니다. 이를 본 여종들이 달려들어 시리마를 넘어뜨리고는 두들겨팼습니다. 웃따라가 사람들을 물리치고 시리마에게 물었습니다.
“시리마야, 그런 행동이 그대에게 무슨 이익이 되는가?”
웃따라는 시리마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면서 도리어 위로해주었습니다. 시리마는 웃따라에게 엎드려 용서를 구했습니다. 웃따라는 시리마에게 말했습니다.
“용서를 구하려거든 부처님께 용서를 구하도록 해라.”
웃따라는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청을 올렸고, 부처님과 비구승가가 공양을 마치고 나자 시리마는 부처님께 참회하였습니다. 부처님은 법문을 마치신 후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분노를 정복하는 것은 겸손과 자비/ 사악을 정복하는 것은 선과 지혜
인색을 정복하는 것은 관용과 베풂/ 거짓말을 정복하는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법구경] 제223송
 


웃따라의 용서와 이신혜 또는 다혜의 용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신애와 다혜가 생각한 용서는 누구를 위한 용서였을까요? 분명한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용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용서한다면 가해자가 어떻게 사는지는 괘념치 않게 될 것입니다. 만해스님이 전해주시는 채근담 한 대목을 되새깁니다.

 
“소인과는 원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소인은 제 스스로 적을 만든다. 군자에게는 아부하지 말라. 군자는 원래부터 사사로운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

 
그를 사랑하면 그도 나를 사랑하고/ 그를 미워하면 그도 나를 미워하는 법,
사랑도 미움도 오직 나에게 달린 것을/ 왜 하필 이 산승에게 물으시는고?
愛人人我愛 憎人人我憎 愛憎惟在我 何必問山僧
-월하계오(月荷戒悟, 1773~1849), 「삼가 석산 한상사의 운을 따라(謹次石山韓上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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