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호법법회(6/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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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정사 소식

6월 호법법회(6/1,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06-01 15:51 조회1,3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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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해의 절반의 시작을 알리는 6월의 첫째주 수요일 아침, “청정사찰 실천지침을 준수하며 6월 호법법회를 봉행합니다.

중앙승가대 수행관장 동명스님께서 [‘를 죽임으로써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겠습니다! ]라는 주제로 반야심경 수행법에 대하여 법문해 주셨습니다.

반야심경속에 담긴 의미를 하나하나 쉽게 풀이해 주신 스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불법속에서 실천해야할 덕목을 지극한 마음으로 새기겠습니다.

법회에 참석하지 못하신 불자님께서는 유튜브 온라인 동영상 법문을 통하여 부처님을 섬기는 공덕에 대하여 함께해 보시길 바랍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동명스님의 온라인 동영상 법문 : https://youtu.be/156uGxzV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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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죽임으로써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겠습니다!
- 반야심경 수행법

  

중앙승가대 수행관장 동명스님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너느니라.” 우리 불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반야심경의 첫 문장입니다. 오늘은 이 문장에 담긴 함의를 중심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해봅니다.

 
첫째,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겠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천개의 눈으로 중생을 관찰하여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가 있으면 천개의 손으로 돌보아주시는 보살님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행위는 절대적으로 이타적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반야심경의 첫 문장을 보십시오. ‘온갖 고통에서 건넌 상태’는 열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일상어로 ‘행복’이라고 해석하겠습니다. 관세음보살님도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여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보고는 당신 스스로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되어 행복해지셨습니다. 이처럼 보살님도 당신 스스로의 행복을 성취하는 것을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보살행도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실로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고는 보살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을 무수히 많이 합니다. 과식하는 것은 자신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수시로 과식합니다. 과음하는 것은 더더욱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한잔 들어가면 자신에게 해가 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애착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로 인해 자신이 병들어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우깁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의 자신에 대한 사랑은 ‘감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신이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마음을 쓰고 행동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은 우리에게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둘째, 나 자신의 몸과 마음과 느낌을 항상 알아차리겠습니다.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한다는 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좁은 의미로는 위빳사나 수행을 한다는 뜻이고, 넓은 의미로는 바라밀행을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우선 좁은 의미로 보아 위빳사나 수행을 하는 쪽으로 실천하겠습니다. 오온이 공한 것을 통찰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이 위빳사나 수행입니다. 위빳사나 수행의 일차적인 방법은 내 몸과 느낌과 마음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몸과 느낌과 마음을 철저하게 관찰하면서 그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고, 영원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괴로움이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알아차림을 실천하는 것’이 수행의 시작임을 이 구절을 통해서 더욱 깊이 확인하면서, 항상 알아차림을 실천하겠습니다.

 


셋째, ‘나’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오온(五蘊)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인데, 색은 몸이요, 수생행식은 마음입니다. 다시 말해 ‘나’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오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위빳사나 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이 영원하지 않고 실체가 없다는 것을 비추어보셨습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은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는 태도를 완전히 버리실 수 있었습니다. 반야심경은 이렇게 첫 문장, 관세음보살님의 체험담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는 태도를 반야심경에서는 ‘공(空)’이라는 한 글자로 표현했고, 공의 현상론은 연기(緣起)이고, 실천행은 중도(中道)입니다. 중도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은 팔정도(八正道)입니다. 팔정도는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언어생활, 바른 행동, 바른 직업(생계유지), 바른 노력, 바른 알아차림, 바른 선정(집중) 등입니다.
또한 저는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는 태도의 일상적인 발현이 보현행원에 있다고 생각하고, 보현보살의 십대 행원을 다음과 같이 일상 속에서 실천하고자 합니다. ①누구를 만나든 먼저 인사하겠습니다. ②칭찬하겠습니다. ③보시하겠습니다. ④먼저 사과하겠습니다. ⑤남이 잘될 때 질투하지 않겠습니다. ⑥남의 말을 잘 경청하겠습니다. ⑦모든 생명체가 안락하기를 바라겠습니다. ⑧배우는 자세로 살겠습니다. ⑨누구든 평등하게 섬기겠습니다. ⑩공덕을 지은 후에는 대가를 바라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저는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는 태도의 실천행으로 팔정도와 보현행원을 선택하여 수행하고자 합니다.

 


넷째, 문제의식을 갖겠습니다. ‘온갖 고통에서 건넜다’는 구절을 통해 우리는 관세음보살님이 사성제(四聖諦)를 통해 괴로움을 철저하게 통찰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성제의 첫 번째는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고성제(苦聖諦)입니다. 괴로움이 어떻게 성스러운 진리가 될 수 있을까요? 괴로움을 인지함으로써 괴로움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괴로움의 인지’를 저는 ‘문제를 인지하는 것’, ‘문제의식’으로도 해석합니다. 문제의식을 갖지 않으면 문제에 대한 해결의지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의식을 철저하게 가짐으로써,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그 문제를 차분하게 풀어나가겠습니다.
문제의식을 철저히 갖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알게 될 것입니다. 원인까지가 규명되면 해결 가능성을 확인하고 해결책을 실천하면 됩니다. 수행하는 입장에서 그 해결책은 육바라밀/십바라밀로 일반화될 수 있습니다.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반야(般若), 여기에 더 보탤 것이 무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적인 보살행의 실천을 위해 십바라밀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방편(方便)・원(願)・력(力)・지(智)가 그것입니다.

 


도는 마음 밖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아니요/ 남에게 물어서 될 일도 아니라네/
빛이 비치는 곳을 돌이켜 비추어보아/ 겁 밖의 몸을 알아야 하느니라/
道非心外得 底事問他人 返照回光處 應知劫外身(一)
비워야만 한 움큼이라도 담을 수 있느니/ 바닷물도 모두 병에 담을 수 있노라/
어떤 물건이 평범하든 거룩하든/ 이름 짓기 어렵고 형상도 없노라
空應皆納掬 海亦盡盛瓶 有物通凢聖 難名又沒形(二)
-월봉책헌(月峯策憲, 1623~), [해선사에게(示海禪)]

 
월봉책헌 선사가 법명이 해공(海空)인 선사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써주신 시인 것 같습니다. 컵에 이미 커피가 가득 들어 있으면, 그곳에 새로운 음료수를 넣어서 마실 수 없지만, 커피를 비우면, 그 컵에 새 음료를 채울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 가르침으로 해석한다면, 비워야 하는 것은 오온(자기 자신)이구요, 채울 것은 팔정도요, 육바라밀이요, 십바라밀이요, 보현행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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