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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정사 소식

6월 첫째주 일요(포살)법회(6/5,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06-05 14:51 조회1,2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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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첫째 일요(포살)법회가 사중스님들을 모시고 도향거사님의 인례로 봉행되었습니다. 매월 첫째 일요일은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깨끗이하는 포살의식에 이어, 벽암 지홍스님의 죽음이 없다면 인간에게 재앙만 있을 뿐이다 이라는 주제로 인간의 본질(本質)만 지키고 있으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고 법문을 하셨습니다.

오늘 법회 사회는 환희지 보살님, 집전 도향 거사님, ppt 여련심 보살님, 발원문낭독 보정성 보살님, 문수1구의 점심공양 나눔봉사였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벽암 지홍스님의 동영상 법문 : https://youtu.be/JugBoDgY7-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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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살의식이 있는 6월 첫째주 일요법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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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우바새 우바이의  계이니, 신명이 다하도록 지킬지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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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석가모니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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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석가모니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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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원문 낭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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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기본교육 토요반 홍태명(덕우)거사님과 조영선(묘광화)보살님이 일요법회에 오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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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심공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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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수1구의 점심공양 나눔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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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이 없다면 인간에게 재앙만 있을 뿐이다

벽암 지홍스님

  제나라 경공(제나라 임금)이 우산(牛山)에 놀이 갔다가 북쪽에서 자기 나라의 성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름답도다. 나의 나라여! 울창하고 무성하도다. 어찌 이런 나라를 버려두고 어느 날 죽어 사라져야만 하는가? 만약 예로부터 죽음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나는 이 영화를 영원히 누릴 터인데 어찌 떠나야 한단 말인가?”
  그러자 곁에 있던 사공과 양구거도 모두 따라 울면서 말했다.
 “저희들은 임금께서 내려 주신 덕분에 거친 채소나 시원찮은 고기일망정 얻어먹을 수 있었으며, 느린 말이나 작은 수레일지언정 얻어 타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죽지 아니하고 싶거늘 하물며 우리 임금님께서야 오죽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안자만이 곁에서 홀로 웃고 있는 것이었다. 경공은 눈물을 닦고 안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내가 오늘 놀이에서 슬픔에 겨워하자  사공과 양구거도  모두 나를 따라 울고 있는데 그대는 홀로 웃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요?
  그때 안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어진 분들이라 하여 그들로 하여금 영원히 살아남아 이 나라를 지키도록 하였다면, 옛날 이 나라의 훌륭한 임금들이셨던 태공이나 환공이 지금도 이 나라를 지키고 계실 것입니다. 또 용기 있는 분들이라 하여 그들로 하여금 영원히 이 나라를 다스리도록 하였다면, 용맹으로 이름을 떨치셨던 장공과 영공께서도 지금도 이 나라를 다스리고 계실 것입니다.
이런 몇몇 임금들이 이 나라를 지키고 있다면 지금 임금님께서는 도롱이나 입고 삿갓을 쓰고 밭두둑 가운데서 그저 일하느라 고달플 텐데 죽음을 염려할 겨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한 상황이라면 임금님께서는 어찌 지금의 임금 자리에 있을 수나 있겠습니까? 따라서 차례대로 임금 자리에 오르고 번갈아 가며 그 자리를 떠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임금님께 차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홀로 그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이는 어질지 못한 행동입니다. 어질지 못한 임금님을 보고 아첨하는 신하들을 보았던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두 사람들 때문에 홀로 몰래 웃었던 것입니다.”
 경공은 부끄러워하면서 술잔을 들어 스스로 벌주로 삼았고, 두 신하들에게도 각각 두 잔의 벌주를 내렸다.
  인간에게 죽음이 없다면 그것은 곧 재앙이다. 모든 생물에게는 죽음이 있기에 이렇듯 조화를 이루고 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죽음은 당연한 것이고, 후세를 위해서는 축복이다. 따라서 나의 죽음도 곧 축복이다. 내가 태어나는 것도 축복이요, 내가 사는 것도 축복이며, 내가 죽는 것 또한 축복일 뿐이다. 이는 나를 위해서도 후세를 위해서도 온갖 생물을 위해서도 축복인 것이다.
  열자(列子)의 이 이야기는 인간에게 죽음이 없다면 어떤 재앙이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에게 죽음이 없다면 임금이 된 제나라 경공은 임금은커녕 죽지도 못하고 평생 밭을 갈며 살았을 것이다. 또한 그 수없이 많아진 인간들이 이 한정된 환경에서 어떻게 살겠는가? 그야말로 재앙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은 100년 미만의 짧은 삶을 사는 것이 전부이다.
 이 짧은 삶을 우리는 왜 이다지도 힘들게 살아야 하나? 원래 잘 살아야 될 우리의 인생을 왜 이다지도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인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가치관 및 정의가 우리에게 올가미를 씌우고 있는 것이다. 그  모든 올가미를 벗는 순간 우리는 세상 모든 것과 하나되어 원래 잘 살아야 할 삶을 있는 그대로 잘 살게 된다.
  또 이야기에서는 사공과 양구거라는 신하를 통하여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저 저 하나 먹고 살려고 인간의 본질을 가린 채 온갖 아부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 또한 지금을 살고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인간에게 본질(本質)만 지키고 있으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본질을 온갖 관념으로 가리고 있기에 이렇듯 세상을 두려움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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