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하루기도 및 포살의식 (5/1,일,음4/1)
본문
불기2566(2022)년 음력 4월 초하루기도 및 5월 첫째주 일요포살법회를 봉행합니다. 화사한 5월의기운속에서 초하루기도를 올리고 난후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포살의식에 이어 “만물은 부처님의 모습”라는 벽암 지홍스님의 법문으로 마음의 양식을 채웁니다. 스님의 말씀처럼 부처님오신날을 일주일 앞두고 나에게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의 주위에 부처님이 와 계신지 한번 돌아볼 시간인 것 같습니다.
오늘 법회 사회는 덕산 거사님, 도향 거사님, ppt 자인향 보살님, 발원문 낭독에 봉경덕 보살님, 문수1구의 점심공양 나눔봉사봉사였습니다.
지홍스님의 유튜브 동영상 법문 : https://youtu.be/5ugUClbRjHg
- 벽암 지홍스님의 법문이 있는 첫째주 일요포살법회 -
- 천수경을 독송합니다 -
-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예경합니다 -
- 신중단퇴공 -
- 간절한 마음으로 두손모아 기도합니다 -
- 우바새 우바이의 계이니, 신명이 다하도록 지킬지니라 -
- 나무 석가모니불 -
- 금강정사 법회는 유튜브 생방송을 통하여 온라인 불자들과도 함께 합니다 -
- 일요법회를 통하여 감사패 전달 -
-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해제로 인하여 대중공양을 위하여 오랫만에 공양준비중이신 보살님들 -
- 문수1구의 공양준비 -
만물은 부처님의 모습
벽암 지홍스님
“만물(萬物)은 개유불성(皆有佛性)이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만물은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 “대자연의 이치가 불법 진리이며 자연이 설법을 한다.”고 하는 말씀과 “이 우주는 비로자나 법신불(法身佛)이며 불국토(佛國土)다.”라고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여기서 법이라고 하는 것은 진리를 말하는 것이고 법신불이라고 하는 것은 진리 그 자체를 부처님으로 인격화시켜서 하는 말씀입니다. 경전의 말씀을 우주 자연과 견주어 설명하자면 자연의 이치는 곧 진리이며 불법(佛法)이고 자연의 모습은 곧 법신불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자연세계는 부처님의 세계인 불국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올바로 보지 못하고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욕망에 집착하여 무명(無明)속에서 어리석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모든 병고와 고통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계절, 금강정사 도량과 주변에는 음악과 춤이 자연의 무대 위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새가 지저귀고 여러 가지 꽃이 피어서 바람에 향기를 휘날리며 춤을 추고 있습니다. 밭에는 새로운 계절이 꾸며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떤 무대가 이처럼 아름다움을 줄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풍경을 미술적인 시각으로 보면 미술의 세계가 펼쳐지고 음악적인 측면에서 보면 음악적인 흥이 펼쳐집니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생태계의 법칙인 약육강식의 세계가 펼쳐지기도 합니다. 가로등 밑으로 날아든 곤충을 잡아먹기 위해 두꺼비와 개구리가 모여들고 개구리를 잡아먹기 위해 뱀이 가로등 밑으로 오기도 합니다. 거기에도 생로병사와 약육강식이 어김없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씨를 뿌리면 새싹이 나고 풀이 나고 파리, 모기, 곤충들이 태어나 자라는가 하면 비가 오지 않아 가물어 병들고 말라죽기도 합니다. 너도나도 늙어가고 있고 마을 사람들이 늙고 병들어 죽기도 합니다. 또 죽음의 상징인 묘도 산비탈과 밭 가운데 있습니다. 그야말로 만물이 자연의 이치와 체계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생성 소멸해 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자연은 모든 것을 다 들어내 놓고 우리에게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부처님을 만날 수 있고 법문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형상적인 부처님이 아니라 진불(眞佛)인 법신불을 뵙고 문자나 음성의 법문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의 법문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바람에게서 집착하지 않는 것을 배우고, 흐르는 개울 물에서 모든 것을 씻어내고 큰 세계로 나아감을 배울 수 있습니다.
금강경에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줄 알면 곧 부처를 보리라.” 하셨듯이 눈에 보이는 형상의 껍데기를 벗겨버리면 진실을 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망념을 마음에서 비우고 세계를 바라보면 세계의 본모습이 본래 진실 그대로 보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 경지의 세계에서는 만물은 부처님의 모습이고 자연의 이치는 법이며 이 세계는 곧 불국토인 것입니다. 그 세계는 새가 노래를 하고 해바라기와 코스모스가 관세음보살의 자비의 미소로 춤을 추고 생태계의 이치가 소리없는 법문을 하고 태양과 바람과 대지가 우리 중생들에게 불보살의 자비를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자연의 현상 속에서 진리를 깨닫고 거룩하신 부처님을 만나고 불보살님의 자비 은혜를 자신의 삶 속에 감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자연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삶의 관계에서도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태양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대지와 바람과 비가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생명을 키우듯이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기르고 스승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친구나 동료가 서로를 돕는 은혜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부처님의 모습과 자비 은혜는 특별한 모습이 아니고 별다른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우리 곁에 부모님과 스승과 남편과 부인의 모습으로 항상 나와 함께 살고 있으며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는 일상적인 생활 가운데 부처님의 자비 은혜가 베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의 법문은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 한없이 설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부처님을 비롯한 모든 존재들에 대한 은혜에 감사할 줄 알고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인류가 태양의 에너지와 빛의 사용료를 청구 받는다면 얼마나 될까요? 공기와 물, 대지의 사용료를 청구받는다면 인류는 자연에게 얼마나 지불을 해야 할까요? 부모님이 자식에게 양육비를 청구한다면 얼마나 될까요? 스승이나 부인, 남편이 교육 및 봉사료를 청구한다면 얼마나 될까요? 아마 우리는 몇 생을 다 바쳐 그 빚을 해결한다 해도 다 갚지 못할 것입니다.
이 계절에 대자연에서 부처님과 부처님의 은혜를 만날 수 있고 부모님과 이웃과 남편, 부인에게서 부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연의 이치와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법문을 들을 수 있는 지혜의 눈을 떠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부처님의 모든 은혜를 갚는 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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