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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둘째주 일요법회(2/13,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02-13 15:17 조회1,6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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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 2월의 아침, 둘째주 일요법회를 석두스님을 모시고 봉행하였습니다.

사부대중들이 한마음으로 코로나19 극복과 치유를 위한 기도정진 일환으로 부처님 말씀이 담긴 보배경을 다함께 합송합니다. 이어서,“ 진리는 개념적 이해가 아니라 체험적 실천에서 얻어진다 이라는 주제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하는 세상속에서 올바르게 정보를 취하고 정리해서 바르게 수행하고 실천하는 부처님의 말씀에 대하여 석두스님께서 법문하셨습니다.

사회에 도안 거사님, 집전 법성 거사님, ppt 원불성 보살님, 발원문 낭독에 대자덕 보살님, 온라인 방송송출에 지승 거사님, 발열체크 및 점심 공양물 나눔에 문수2구였습니다.

 

석두스님의 유튜브 동영상 법문 : https://youtu.be/4x_viQ_aD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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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는 개념적 이해가 아니라 체험적 실천에서 얻어진다


봉은사 포교국장 석두스님


 지금 대한민국은 진실공방이 한창이다. 내 편은 무조건 옳고 상대편은 그르다고 한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나로서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아직 노선을 정하지 못한 중간지대의 대다수 유권자들은 귀를 세우고 주장을 경청하고 판단을 유보하며 내 판단과 선택이 올바르기만을 바랄 뿐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 했던가?

 

  진실을 볼 줄 아는 안목을 키우고 진실이 체화된 삶을 추구하는 종교인들에게도 선택의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일인 것이다. 그럼 우리 붓다께서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하셨을까? 초기 니까야에 보이는 한 대목에서 붓다의 지혜를 빌어서 이 문제의 답을 찾아보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꼬살라에서 큰 비구 승가와 함께 유행하다가 우빠싸다라는 꼬살라의 바라문 마을에 도착하셨다. 세존께서는 그곳에 계시는 동안 그곳 북쪽에 있는 데와와나 쌀라 나무숲에 머무시었다. 그때 장끼 바라문이 그곳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은 꼬살라의 왕 빠쎄나디가 하사한 봉토로서 인구가 많고 풀과 장작과 물이 풍부하고 곡식이 풍부한 곳이었다.... 중략

 

그 때 3가지 베다에 통달하고, 어휘론과 의궤론, 그리고 역사에 정통하고 잘 해석하고, 세속의 철학과 대인사에 대한 지식에 부족함이 없는 까빠티까라는 삭발한 젊은 바라문 청년이 대중 가운데 앉아 있었다.... 중략

 

“고따마 존자여, 바라문의 오래된 베다의 말씀은 끊이지 않고 경전으로 전승된 전통입니다. 바라문들은 그 베다에 의지하여 ‘오로지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기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바라드와자여, 그렇다면, 바라문 가운데 누구든 ‘내가 그것을 안다. 내가 그것을 보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이야기한 바라문이 한 사람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고빠마 존자여” ... 중략

 

“바라드와자여, 그와 같다면 그것은 맨 앞사람도 보지 못하고, 가운데 사람도 보지 못하고, 맨 뒷사람도 보지 못하는 장님들이 고집스럽게 줄지어 서 있는 장님들의 줄서기 같은 것이라오. 이와 같이 바라문들의 신념은 근거가 없지 않나요?”
“고따마 존자여, 이 경우에 바라문들은 결코 신념 때문에 숭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문들은 이 경우에 전통 때문에 숭배합니다.”

 

“바라드와자여,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결론을 갖는 다섯 가지 법이 있다오. 신념, 기호, 종교적 권위가 있는 전설, 논리적 추론, 사변에 의한 독단적 사상의 승인, 이것이 두 가지 결론을 갖는 다섯 가지 법이라오.”

 

“바라드와자여, 어떤 지식이 전적으로 믿음이 간다고 해도, 자신의 마음에 든다 해도, 전설과 일치한다 해도, 논리적으로 잘 추론된 것이라고 해도, 자신이 인정한 사상과 일치한다 해도, 그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고, 공허할수 있고, 거짓일 수 있다오.”

 

그리고 다음으로 진실한 법을 수용하는 태도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는 법을 듣고 그것을 기억한 후에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고 그 법을 수용할 것이오. 법을 수용하면 의욕이 생기고, 의욕이 생기면 노력할 것이고, 열심히 헤아려 보고 정진할 것이오. 그리하여 스스로 몸으로 확고하고 바른 최고의 진리를 직접 체험할 것이오.”

 

“바라드와자여, 스스로 최고의 진리를 작증하고 지혜로 그것을 통찰하게 될 때, 진리에 대한 인지가 있게 된다오. 바라드와자여, 인식한 법을 끊임없이 수행하고 실천할 때 진리의 성취가 있게 된다오.”

 

 세존께서는 ‘세상 속에서 통용되고 인정되는 법일지라도 어떤 개인적, 사회적 용인이 그 법의 진리성을 담보하지는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신다. 오로지 그 법의 의미를 깊이 통찰한 후에 수용하고 몸으로서 체험하라 하신다. 그리고 끊임없는 수행과 실천 속에서 진리의 성취가 있다고 하신다.

 

요즘 같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올바른 정보를 취합하고, 그 정보에 입각해서 각자의 입장을 정리하고, 수용하며, 더 나아가서는 수행과 실천을 겸비한다면 올바른 판단과 성취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2600년 전의 세존의 지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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