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호법법회(7/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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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호법법회(7/7,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7-08 09:43 조회3,9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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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임을 아낌없이 표현하는 햇살로 시작된 7월의 첫째주 수요일 아침, “청정사찰 실천지침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호법법회를 봉행합니다.

중앙승가대 수행관장 동명스님께서 [ 부처님께서 첫 설법을 망설이신 이유(의미)]란 주제로 법문하셨습니다.

법회에 참석하지 못하신 불자님들은 온라인 동영상 법문을 통하여 동명스님께서 생각하시는 부처님께서 첫 설법을 망설이신 4가지의 이유(의미)를 함께해 보세요.

 

동명스님의 온라인 동영상 법문 : https://youtu.be/RzUO5YXZE6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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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명스님의 법문이 있는 호법법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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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께 예경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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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들의 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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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문 :  부처님께서 첫 설법을 망설이신 이유(의미)] - 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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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첫 설법을 망설이신 이유(의미)

 

중앙승가대 수행관장 동명스님

 

성도 후 여섯 번째 7일을 보내신 부처님은 삼매에서 깨어나셔서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 아래로 가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생각하셨습니다. ‘내가 깨달은 이 진리는 심오하고, 어려워서 감각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을 것이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성찰하시고 진리를 설하는 것을 망설이고 계셨습니다.

한때 저는 부처님께서 설법을 망설이셨다는 것은 그저 신화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붓다가 되어 모든 중생을 안락하게 하겠다는 큰 원력을 세우고 오셨는데, 본격적으로 그 원력을 실행할 때가 되자 오히려 포기하려는 마음을 가지셨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설법을 망설이셨다는 것은 부처님의 초전법륜(初轉法輪)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신화였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이야기에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설법을 망설이실 때 당시 최고의 신 브라흐마 사함빠띠가 등장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진리를 가르쳐주십시오. 선서께서는 진리를 가르쳐주십시오, 눈에 티끌이 거의 없는 중생들이 있는데, 그들이 가르침을 들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브라흐마는 이어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오르면 모든 사람을 볼 수 있듯이/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을 한눈에 살피시는 분이시여/ 슬픔에 빠져 있는 중생들을 구원하소서/ 진리의 누각에 올라/ 생사의 굴레에 빠져 있는 이들을 굽어살피소서/ 영웅이시여/ 일어나소서/ 진리를 설파하소서”

브라흐마가 세 번이나 청하자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눈에 티끌이 거의 없는 중생들과 마음에 때가 많이 묻은 중생들과 예민한 감각의 중생들과 둔한 감각의 중생들과 좋은 성향을 가진 중생들과 나쁜 성향을 가진 중생들과 교화하기 쉬운 중생들과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들을 보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침내 세상을 향해 사자처럼 포효하셨습니다.

“내 이제 감로의 문을 여노라/ 어서 오라, 새로운 세계로”

저는 브라흐마의 청법(請法)과 부처님의 설법 결심을 통해 중요한 교훈 또는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첫 설법을 망설이신 이유(의미)를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이 일화는 시절인연이 도래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함부로 내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시절인연이 맞아야 한다는 것은 조건이 성숙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달마대사가 선불교를 전하기 위해 중국에 와서 보니, 교종이 국가권력과 연결되어 엄청난 세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교종에서 볼 때 선불교는 이단이었습니다. 달마대사는 선불교를 전파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소림사의 바위굴에서 9년 동안 면벽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9년이 지나자 비로소 시절인연이 무르익었음을 확인하고 선불교를 전파하셨습니다.


달마대사를 1조로 볼 때, 6조 혜능스님은 행자시절에 스승 홍인대사에게 법통을 이어받습니다. 그러나 스승의 주문이 특이했습니다.

“너는 법을 가지고 남쪽으로 가되, 삼 년 동안은 이 법을 펴려 하지 말라. 환란이 일어나리라. 뒤에 널리 펴서 미혹한 사람들을 잘 지도하여, 만약 마음이 열리면 너의 깨침과 다름이 없으리라.”(육조단경) 

3년이 아니었습니다. 육조 혜능은 15년 동안 사냥꾼 무리에 섞여 살면서 세상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한창 젊은 나이에 진리를 깨달았는데도 불구하고 숨어서 지내야 하는 처지가 참으로 한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조 혜능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15년 후에 자신의 법을 펼치기 시작하자 세상은 순식간에 혜능의 세상의 되었습니다. 

저는 범천의 권청(勸請) 전설과 관련하여, 저는 부처님께서 설법을 망설이셨다기보다는 시절인연이 도래했는지를 확인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브라흐마의 권청’은 시절인연이 임박했음에 대한 명백한 확인인 셈이지요.

 

둘째, 부처님께서 소통의 중요성을 간접적으로 강조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은 세간해(世間解)라고 불리듯이 세상의 모든 일을 아시는 분이므로 당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에 옮기셔도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은 브라흐마의 얘기를 들으십니다. 이는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소통을 통해 뜻을 교환하는 것이 일을 도모하는 데 매우 유익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시절인연이 무르익었으면 주저하지 말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으로 보입니다. 무르익었을 때 주저하게 되면 시기를 놓칠 수가 있습니다. 바둑을 관전하다보면, 기회가 왔을 때 상대를 제대로 응징하지 못하여 역습을 당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마지막으로, 브라흐마의 권청은 우리도 선지식께 설법을 청해야 함을 말해줍니다. 앞에서 시절인연을 말씀드렸는데, 청법은 시절인연, 또는 조건의 성숙을 앞당겨줍니다. 우리는 어떤 분야에서든 선지식을 만나면, 그에게 가르침을 청해야 합니다. 배우는 자세는 하심(下心)하는 것이며, 자신을 발전시키는 태도입니다.

진각혜심(眞覺慧諶, 1178~1234)스님의 두 편의 선시로 정리해봅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보슬보슬 보슬비 천기를 누설하고/ 불어오는 맑은 바람 조사의 뜻 분명하네

따지거나 여기저기 날뛰지 말고/ 다만 시절 인연을 기다려라

細雨霏微 天機已洩 淸風淡蕩 祖意全彰 但觀時節 不要啇量


이 마음 본시 한계가 없거니/ 어찌하여 사람들은 한계를 지어

보고 듣는 이 속에서 머뭇거리고 있는가/ 눈뜬 이 이걸 보고 한바탕 웃네

此心本自離邊際 爭奈時人局限何 況著區區陰界裏 看來不免笑呵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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