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호법법회(3/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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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호법법회(3/5,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3-05 15:39 조회3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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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법발원) 

 저희들이 이 땅에 감로법을 널리펴 부처님의 정법이 영원히 머물며 

겨레와 국토를 진리광명으로 빛낼것을 굳게 서원합니다.

 

3월 호법법회가 3월5일(수) 스님들의 인례로 여법하게 봉행되었습니다.

 

벽암 지홍스님께서는 법문을 통해 유관기관 시설운영을 통한 호법사업의 이해 및

진행현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후 오늘 법문주제 "자비관 수행과 그 공덕"에 대한

말씀을 이어주셨습니다. 

 

벽암 지홍스님의 3월 호법법회 법문은 금강정사 유튜브 채널로 함께하실수 있습니다.

 

https://youtu.be/Lh6rM-AD0IE


함께했던 호법법회날.. 사진소식으로 함께하세요~~~~~

 

하안구 식구들의 점심공양준비, 법회후 수도권구 불기닦기 운력,

스님들과 함께하는 연등전구 교체 운력, 그리고 수도권구 법등모임까지...오늘하루

법회와 모임 및 운력에 함께해 주신 모든분들께 감사와 찬탄의 박수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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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관 수행과 그 공덕


벽암 지홍스님


 마애불의 미소가 떠오른다. 우리 중생들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번뇌를 지나온 듯한 그 깊은 마애불의 미소에 머리 조아려 귀의한다. 그 고요한 미소 속에 동체대비의 큰마음, 자비가 담겨 있다. 곧 자비란 개인의 해탈과 함께 중생교화를 발원한 대승보살의 평등하고 청정한 마음이다. 佛道를 이루고자 서원한 불자들 또한 ‘자신의 욕망’에 이끌리는 중생의 마음을 극복하고 보살의 마음, 자비심으로 살아야 한다. 작은 미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육도중생을 향한 연민을 일으켜, 그들 모두가 나고 죽는 윤회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영원한 안락에 이르길 간절히 축원하는 마음에 머무는 것, 이것이 자비관이다. 마음의 작용은 미묘하여 크기로 말하면 온 허공을 싸고도 남음이 있다. 이 큰마음에 머물러 스스로 관세음보살의 손(千手)과 눈(千眼)이 되어 세상과 더불어 함께 사는 데서 자비가 성숙된다. 이 자비로 일관된 삶 속에서 계행은 절로 청정해지며,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등 불자들이 성취해야 할 육바라밀 또한 원만해진다. 또 부모가 자식을 염려하듯 한, 그 간절한 연민의 마음에서 이루어진다면 우리들 생은 얼마나 행복하고 평화로울까.

  우리가 비록 욕망과 이기심이 뒤섞인 번뇌 속에 살고 있다 해도 그 내면 깊은 곳에는 순수하게 열려 있는 연민의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육도 중생 모두에게 불성(佛性)이 있음을 굳게 믿는 것에서부터 자비관 수행은 시작된다. 그런 다음 좌선하는 자세로 앉아 호흡법으로 몸과 마음의 헐떡거림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한다. 호흡이 고르지 못하면 관(觀)도 산만해지기 쉬우므로 관이 잘 안된다고 생각되면 우선 호흡이 잘 되고 있는가를 살펴서 행주좌와 어떠한 경우에도 호흡과 觀이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몸과 마음이 고요한 가운데 집중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다음과 같은 경(經)의 내용을 일심으로 관한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 강하거나 약하거나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무거운 것이거나 가벼운 것이거나 모두 행복해 지기를, 편안해 지기를, 착해지기를 바래야 한다. 또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가까이 있는 것이나 멀리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모든 생명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래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남을 속이거나 무시해서도 안 되고 미워해서도 안 된다. 분노하는 마음도 해치려는 마음도 내서는 안 되며, 남에게 아픔을 주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지키듯이 모든 생명들에 한량없는 자비심을 내야 한다. 이렇게 사는 것을 귀한 삶이라고 한다.』     -자비경- 


부모는 자식이 멀리 떠나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또 잘나고 못나고를 가리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한다. 뼈를 깎는 아픔 속에서도 절대 자식 곁을 떠나지 않는다. 자비관 수행이란 이 같은 절대적인 사랑, 자비로 모든 존재들의 삶을 헤아려 보살피며 살고자 하는 마음 닦음이다. 



  풀 한 포기, 작은 벌레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존재들의 아픔을 사무치게 관하고 하루빨리 그러한 과보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행복해지를 발원하는 간절한 마음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에 머물러 사는 한 서로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내는 일은 추호도 있을 수 없다.

  또 사람들은 제 욕심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서로 다투고 질시하는 아수라 속에서 아귀처럼 허덕이며 살기도 한다. 비록 인간 세상에 났다 해도 사람의 마음은 지옥에서 천상에 이르기까지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다. 이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좌충우돌 살고 있는 삶에서 나와 스스로를 세상을 자비심을 일으켜 들여다보는 것이다. 자신이 장자의 아들인줄도 모르고 거지행색으로 세상을 떠도는 어리석은 아들〈법화경〉의 비유처럼 우린 한량없이 큰마음을 겹겹의 미망 속에 가두어 두고 쉴 새 없이 방황하고 있다. 이 어찌 연민의 마음이 일지 않겠는가. 이생의 본질을 꿰뚫는 지혜의 안목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자비로 자식, 남편, 아내 등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존재들의 삶을 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 살 에는 줄도 모르고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며 살고 있는 중생의 삶에서 하루빨리 깨어나기를 간절히 발원한다. 악도에 떨어져 고통받고 있는 악업 중생까지도 가엾이 여겨 구제하기를 서원하고 계시는 불보살님들처럼. 서 있을 때나 걸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있을 때나 깨어있을 때나, 가리지 않고 자비심을 일으켜야 한다. 쉬지 않는 자비관 수행은 존재의 참모습을, 苦(고)를 이해하는 성숙한 삶으로 이끌어간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불수레지옥에 계실 때, 불수레를 끄는 지옥중생을 가엾이 여겨 자비를 베풀기를 간청하다가 쇠작살에 목이 찔려 백겁 동안의 지옥고에서 벗어나셨다 한다. 이 같은 자비원력은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훌륭한 성취를 가져온다. 이 ‘나’를 극복한 순수한 마음은 아무 사심(邪心)이 없어 두려워할 것이 없다. 거기서 힘이 나온다. 우리 주변에는 부모조차 버린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또 버려진 노인들을 내 부모처럼 키우고 돌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 자비원력으로 사는 사람들이 진정한 자비관 수행자이다. 그들의 행(身)과 말(口), 그리고 마음(意)은 언제나 너그럽고 따뜻하지만, 그 속에 세상의 고통을 이기는 힘이 있다. 마애불의 미소에서처럼 말이다. 


  자비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자비관 수행 공덕을 말하고 있다.


『악몽을 꾸지 않아 편안히 잠을 잘 잘 수 있으며, 즐겁게 깨어난다. 또 사람들이나 사람 아닌 존재들의 아낌을 받는다. 불의의 사고나 장애가 없다. 천신들이 보호해준다. 불(火)이나 독, 또 무기의 해를 입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쉽게 선정을 이룰 수 있고 얼굴표정은 평온하고 밝으며 임종에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설혹 이 사람은 높은 경지를 못 얻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행복한 세계에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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