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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정사 소식

4월 넷째주 일요법회(4/25,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4-25 14:32 조회5,2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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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아닌 여름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새초롬하니 되돌아온 봄날씨속에 금강정사 4월 넷째주 일요법회를 봉행합니다. 가섭스님의 행원여행은(), 나에서 우리로라는 주제로 스님께서 법문하셨습니다.

[불교의 업사상은 사회와의 관계에 더 많은 중점을 두고있다] 스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일상생활에서 내가 무심코 짓고 있는 업은 없는지 나의 생각, 나의 행동을 차분히 살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법회일이나 재일 예불에 참여하지 못하시는 불자님들께서는 유튜브에서 [대한불교조계종 금강정사]를 클릭하셔서 실시간 온라인법회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법회 사회는 도향 거사님, 집전 대각 거사님, ppt 여해심 보살님, 발원문 낭독에 진각명 보살님, 보현구의 점심공양 나눔봉사와 발열체크 봉사였습니다. 금강 가족 여러분, 무엇보다 항상 건강 조심 하십시오. 마하반야바라밀_()_

 

가섭스님의 유튜브 동영상 법문 : https://youtu.be/jvarCMI7O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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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섭스님의 행원여행이 있는 넷째주 일요법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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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절을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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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의 조기종식을 발원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함께 합송하는 보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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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에서 우리로 ] 라는 주제로 법문하신 가섭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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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님의 말씀속에는 웃음으로 포장된 가르침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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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처님께 두손 모아 합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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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서 우리로

성남 한솔종합사회복지관장/금강정사 도감 가섭스님

 

 빛 밝은도량 신도여러분 반갑습니다. 어느덧 봄의 끝자락에 산하대지는 여름을 맞을 준비에 분주합니다. 코로나의 감염숫자는 줄지 않고 다시 창궐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4차 유행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우려 섞인 전망들이 우리를 긴장의 연속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고난과 인내의 시간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떠한 업(業,karma)을 지어야 할까요. 업(業)의 바른 이해로 우리의 삶이 업(UP)되는 방법을 알아봅시다. 

 
업은 화가와 같아서 / 모든 형상을 잘 그리나니 /
혹 하늘이나 인간이나 / 그리는 것 다하지 못함이 없다.
그러한 그림은 헤아릴 수 없이 / 모두가 업에 따라 변화했나니 /
아무런 채색도 베풀지 않고 / 아무도 보는 이 또한 없다. /
바람벽이 무너지면 그림도 망가져 / 마침내 모두가 흩어지지만 /
이 몸은 비롯 사라질지라도 / 업은 오래도록 남는 것이다.
       [제법집요경]불교성전p226~p227   
 
인연소생(因緣所生)이 우리 세상입니다. 같은 말로는 인연생기(因緣生起)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인연따라 생겨나거나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내가 만든 욕망의 정도에 따라 인연이 좌우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가진 것을 여러분 앞에 놓아 보십시오. 눈앞에 놓인 것은 자기가 원한 것이든 타인이 준 것이든 자신과 관계된 것이고 자신과 무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보는 세상은 여러분이 만든 세상입니다.
 
국화빵 틀에서 국화빵이 나오고 붕어빵 틀에서 붕어빵이 나오는 것처럼 여러분이 전생부터 준비한 업재료로 만든 것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지은 업대로 부모와 인연을 맺고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가정도 바로 여러분의 생각에 따라 형성된 것입니다. 각자 핸드폰 사용 정도에 따라 빅데이터에 의해 자동으로 배너와 광고가 달리 나타나는 것처럼 여러분의 집도 여러분이 만들어 놓은 모습 그대로입니다. 같은 평수, 같은 구조의 아파트지만 가가호호 빛깔도 냄새도 다른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업대로 살아갑니다. 더 나아가서 여러분 한분 한분이 우리절 금강정사도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대로 만든 절,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조성한 불보살상이 펼쳐집니다. 이제 불보살도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개인은 전생의 행위와 지금까지의 행위가 만들어낸 기질과 습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개인은 그 기질을 갖고 성격을 갖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와 세상을 자신의 방식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의도하고 의식합니다. 삼업(三業)이 업력(業力)에 의해 업행(業行)을 거듭하면 업장(業藏)이 되어 개인은 피아노 건반의 음처럼, 기타 코드의 음처럼 고유한 욕망과 행동양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출생, 성장과정, 현재의 장소와 위치, 활동영역, 행동 등이 모두 개인마다 차이가 납니다. 환경의 차이와 개인의 차이는 당연히 관계의 차이, 인연의 차이를 야기합니다. 기압차에 의해 바람의 풍속이 달라지듯이 개인의 업 차이에 따라 그 과보도 다르게 됩니다.
 
그러한 당연한 개인차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 직장, 사찰, 사회에서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고 내 방식을 남에게 강요하면 결국 타인은 괴로움만 쌓이게 됩니다. 보살이 되어 중생을 구제하는 사섭법(四攝法) 중에 동사섭(同事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동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보살은 나와 다른 중생이라는 것을 수용하고 그에게 맞춰야 합니다. 그를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맞춰서 변화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업력이 역학적 인과관계에 의하여, 인연화합(因緣和合)의 관계에서, 상의상관(相依相關)의 관계에서, 그 마음의 주체 의지에 의하여 그 강약이 나타남을 깨우치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허구적인 창조론과 숙명적·운명적 허무주의에서 탈피하고 자유로운 업력의 주체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특히, 인과응보의 교설과 더불어 업의 본질이나 분류에 관한 고찰이 심화되었고, 행위에 대한 과보(果報)로서의 업은 자연법칙적인 인과만이 아니라 인간사회의 윤리성에 직결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즉, 인간 가치판단의 기본적인 것으로서 업보를 나타낸 것입니다. 인간은 몸과 말을 통한 두 가지 업이 행하여지고, 그 행위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표업(無表業)이 됩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행하는 일이 그 사람의 마음을 성숙하게 하고 마음속에 남게 하는 것을 향기가 의복에 풍기게 하는 것에 비유하여 훈습(熏習)이라 말합니다.
 
선악업의 잠재여력은 욕망과 우치(愚癡)와 진에(瞋恚)에 의하여 생깁니다. 업이란 선악이고, 그 결과가 과보입니다. 그 과보와 동질성의 습기(習氣)가 잠재여력으로 남아 업장(業障)이 됩니다. 이것은 다시 공업(共業)과 불공업(不共業)으로 구분되는데, 공업은 생물이 공통으로 받는 업이고, 불공업은 개개생물, 즉 유정세간(有情世間)에서의 자업자득과 자작자수(自作自受)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곧 개업(個業)이 공업으로, 공업이 개업으로 연결되어 사회업(社會業)의 공존공영으로 인한 윤회전생의 순환은 끊임없이 계속됩니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사회와 개인이 결코 무관한 관계가 아님을 업을 통하여 인식시키고, 이와 같이 업을 파악하는 것이 깨달음의 첫 걸음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업은 일상생활의 굴레로서 회전하고 있고 이는 나의 업이 우리의 업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불교의 업사상은 개인의 이숙(異熟:여러 가지로 변화하는 모양)의 인과를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공업(共業)에 더 많은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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