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호법법회(3/3,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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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호법법회(3/3,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3-03 15:30 조회6,3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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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사찰 실천지침생활속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3월의 호법법회를 봄기운이 완연한 수요일 아침, 여법하게 봉행합니다. 중앙승가대 수행관장 동명스님의 법문은 [일상에서 중도를 실천하는 방법 : 생활불교 구현의 길]이란 주제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수행법-중도법문하셨습니다. 저희들도 부처님의 고귀한 뜻을 잘 받들어, 언제 어느 곳에서나 보현보살의 십대행원을 잘 지키고 따르겠습니다.

 

동명스님의 온라인 동영상 법문 : https://youtu.be/RQJq9V2Qg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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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명스님의 법문으로 봉행되는 3월 호법법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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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수경을 독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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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처님께 예경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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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명스님의 법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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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중도를 실천하는 방법

 

생활불교 구현의 길 -

 

 

중앙승가대 수행관장 동명스님

 

 율장 [대품(mahavagga)]에는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신 이후 가장 먼저 연기법(緣起法)을 사유하셨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가장 먼저 설하신 것은 연기법이 아니라 중도(中道)입니다.

 

 

“수행자들이여, 양 극단을 버려야 한다. 한 극단은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탐하는 것으로, 이는 저속하고 열등하고 가치없고 해로운 것이다. 또 하나의 극단은 자신을 학대하고 고통을 주는 고행에 치우치는 것으로, 이 또한 가치 없고 해로운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여래는 이 양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선택했으며, 그리하여 법의 눈을 얻었고, 궁극적인 평화와  위없는 지혜를 증득하여 깨달음과 열반을 성취하였다.”(율장 [대품]; [초전법륜경])

       

부처님께서 다섯 비구에게 연기법을 먼저 설하지 않으시고 중도부터 설하신 이유는, 연기법이 존재의 법칙이라면 중도는 실천의 원칙인데, 실천을 중시한다는 차원에서 중도를 먼저 설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위 인용문에서도 보이듯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수행법’이 바로 중도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의 실천원리로서 중도를 제시하셨지만, 저는 중도가 인생의 성공을 위한 실천원리요, 일상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실천원리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 불자님들의 꿈은 실질적으로 붓다가 되는 것이라거나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성공하고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부처님처럼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중도는 충분히 실천할 가치가 있습니다.

       

자현스님은 중도를 파도타기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파도타기는 몸을 파도의 흐름에 맡김으로써 바다에 가라앉지 않고 질주하는 신기한 기술입니다. 파도타기의 핵심은 오직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파도타기하다가 ‘나는 파도의 흐름에 따르기 싫어, 나는 내 길을 갈래’라고 마음먹는다면, 그 순간 ‘나’는 가라앉고 말 것입니다.

       

중도를 자전거 타기에 비유할 수도 있겠습니다. 네 바퀴나 세 바퀴가 아닌 두 바퀴 자전거는 서 있을 때는 넘어지게 되어 있지만, 잘 굴러가게 되면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전거 타기의 원리를 한번 생각해보지요. 자전거 타기의 비결 또한 흐름에 적절하게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초보자들은 왼쪽으로 넘어지려 하면, ‘나는 왼쪽으로 넘어지지 않을래’ 하면서 몸을 오른쪽으로 젖히고 핸들도 오른쪽으로 돌립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넘어지고 말지요. 자전거가 왼쪽으로 넘어지려 하면, 그 흐름에 맞추어 핸들을 왼쪽으로 꺾어주고, 오른쪽으로 넘어지려 하면, 그 흐름에 맞추어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주면,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고 유유히 달려갑니다. 자전거 타기의 핵심 또한 자기 주장을 하지 않고 흐름에 맡기는 것입니다.

 

중도의 구체적인 실천은 팔정도라고 할 수 있고, 대승불교의 입장에서는 육바라밀, 십바라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팔정도와 육바라밀, 십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 중도를 실천하는 더할 나위 없는 방법인 것은 두말할 필요 없겠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아라한이나 보살이나 붓다가 되겠다는 꿈을 갖지 않는 이에게, 다른 방향의 실천덕목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도를 실천함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주장에 빠지지 않는 것임을 상기해봅니다. 저는 보현보살의 십대 행원이야말로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중도의 실천행’이라 생각합니다.

보현보살의 십대 행원을 다음과 같이 일상에서 구현하는 방향으로 정리해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 누구를 만나든 공경하는 마음으로 먼저 인사합니다.
둘째, 남을 비난하기보다는 가급적 칭찬하고 찬탄합니다.
셋째, 내가 가진 것을 꼭 필요한 이들과 함께 나눕니다.
넷째, 잘못한 일이 있으면, 먼저 사과하고 참회합니다.
다섯째, 이웃이나 동료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내 일처럼 기뻐합니다.
여섯째, 항상 배우는 자세로 남의 말을 경청합니다.
일곱째, 모든 생명체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여덟째, 부처님께서 어떻게 사셨는지를 깊이 이해하고, 부처님을 닮기 위해 노력합니다.
아홉째, 모든 생명체를 섬기는 마음으로 돌봅니다.
열째, 내가 지은 공덕을 혼자 누리지 않고 널리 회향합니다.

 

만약 첫째부터 여섯째까지라도 충실하게 실천하는 사람은 인생에서 성공할 것이요, 일상에서 행복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항상 먼저 인사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좋은 인상을 주게 됩니다. 남을 비난하기보다 칭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주위에 우호적인 사람이 많아지게 됩니다.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는 사람도 주위에 우호적인 사람이 많아집니다. 다툼이 있을 때, 먼저 사과하는 사람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합니다. 질투심을 버리고 남의 경사를 기뻐하게 되면, 내게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주위 사람들이 질투하기보다는 진심으로 기뻐해 줄 것입니다. 이 덕목들은 모두 자기주장으로부터 벗어나야 진정으로 가능한 것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팔정도와 육바라밀과는 좀 다른 차원의, 우리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중도의 길이요, 또한 인생의 성공과 일상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덕목이라 생각합니다.

 

양 끝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리니/ 중도(中道)엔들 어찌 안주하랴/
물이면 물, 산이면 산, 마음대로 쥐고 펴면서/ 저 물결 위 흰 갈매기의 한가로움 웃는다
二邊俱不住 中道亦何安 水水山山任舒卷 笑他波上白鷗閑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 [어디에 머물리요(何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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