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두스님의 일요법회(1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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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락거리는 낙엽소리가 좋은 늦가을 둘째주 아침, 석두스님의 법문이 있는 일요법회(11/8,일)가 봉행되었습니다. “흔적없이”라는 제목으로 법문하신 석두스님의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나의 편의를 위해서 말하지 말라]는 마무리 말씀이 긴 여운을 남깁니다. 동안거를 들어가시게 되어 올해 마지막 법문을 하신 석두스님의 원만한 동안거 기도정진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청정사찰 실천지침”을 준수하며 진행된 둘째주 일요법회는 사회 환희지 보살님, 집전 대각 거사님, ppt 보현덕 보살님, 그리고 발원문 낭독에 여래지 보살님, 문수2구의 점심공양 봉사와 발열체크, 차량운행에 범산 거사님, 거사구에서 심덕거사님께서 주차봉사를 하고 계십니다.
개인 위생관리에 철저히 하며 항상 이웃에 대한 배려와 함께 건강에 유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 석두스님의 법문이 있는 둘째주 일요법회 -
- 코로나19의 조기 소멸을 기원하며 다함께 합송하는 "보배경" -
- [흔적없이] 라는 제목으로 법문을 하시는 석두스님 -
- 어떤 그럴듯한 생각들이나 아름다운 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진리는 항상 가까이,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
- 온라인법회 방송송출 봉사자들의 첫교육이 종무소에서 법회와 함께 진행되었어요 -
- 늦가을 낙엽소리가 좋아서 공양 봉사팀들이 추억만들기를 합니다 -
- 또 공양실 한편에서는 보시받은 고추를 짱아지를 만듭니다 -
흔적없이
석두스님
무엇을 할 때에는, 잘 타는 모닥불처럼,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말고 자신을 완전히 태워 버려야 합니다.
좌선을 할 때 우리의 마음은 고요하고 아주 단순합니다. 그러나 보통 우리의 마음은 매우 분주하고 복잡해서,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며, 이 생각이 어떤 흔적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동에는 어떤 선입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생각은 어떤 흔적이나 그림자를 남길 뿐 아니라 다른 행동이나 사물에 대한 많은 다른 관념들을 우리에게 줍니다. 이 흔적들과 관념들이 우리의 마음을 매우 복잡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아주 단순하게 깨끗한 마음으로 한다면 우리에게는 관념이나 그림자가 없으며, 그래서 우리의 행동은 강력하고 직접적인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것을 다른 것, 다른 사람, 다른 집단과의 관계 속에서 복잡한 마음으로 한다면 우리의 행동은 매우 복잡해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의 행동에 대해 이중 삼중의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돌로 두 마리 새를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보통 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그들은 너무 많은 새를 잡으려 하기 때문에 한 가지 행동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고, 그래서 결국은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말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종류의 생각은 항상 그들의 행동에 그림자를 남깁니다. 생각 자체가 그림자인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경우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거나 준비하는 일이 꼭 필요한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바른 생각은 그림자를 남기지 않습니다. 흔적을 남기는 생각은 상대적이며 혼동된 마음에서 나옵니다. 상대적인 마음은 자신을 다른 사물들과 관계 속에 놓는 마음이며, 자기 자신을 제한하는 마음입니다. 이 작은 마음은 무엇을 얻으려는 생각을 만들어 내며 자신의 흔적을 남깁니다. 행동에 생각의 그림자를 남기면 여러분은 흔적에 집착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은 “이것은 내가 한 것이냐!”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나는 이런 저런 일을 어떠어떠한 식으로 했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이 일어났던바 그대로인 것은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할 때, 여러분은 자신이 한 것에 대한 실제적 경험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한 것에 대한 관념에 집착한다면 여러분은 이기적인 관념에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한 일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늙으면 우리는 자신이 해 놓은 일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는 일이 흔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해 놓은 일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다른 사람들은 웃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회상이 일방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가 말한 것이 그가 했던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더구나 그가 자신이 한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면, 그 자부심은 어떤 문제를 낳을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회상을 반복할수록 그의 인격은 점점 더 왜곡되어, 결국에 가서 그는 대단히 불쾌하고 완고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생각의 흔적을 남기는 예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한 일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불필요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기억해야 합니다.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어떤 것을 기억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한 일을 기억하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일에 대하여 집착하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집착’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활동의, 바로 이러한 흔적들입니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온 마음과 온몸으로 해야 합니다. 즉 여러분이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 일을, 잘 타는 모닥불이 그러하듯, 완전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연기가 나는 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완전히 태워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완전히 태워 버리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한 일 속에 여러분의 흔적이 남을 것입니다. 선의 활동이란 재 밖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태워진 활동입니다. 이것이 우리 수행의 목표입니다. 옛 선사께서 하신 “재는 다시 장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재는 재입니다. 재는 완전히 재이여야 합니다. 이런 종류의 활동이 일어날 때, 하나의 활동이 모든 것을 덮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수행은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또는 하루나 일 년의 일이 아닙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자신의 온몸과 옴 마음으로 좌선을 한다면 그것이 좌선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순간순간 자신을 자신의 수행에 바쳐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한 후에 남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이것은, 그 일을 모두 잊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점을 이해한다면, 모든 이원적 사유와 모든 삶의 문제는 사라질 것입니다. 선 수행을 할 때, 여러분은 선과 하나가 됩니다. 거기에는 여러분도 없고 좌선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절을 할 때, 거기에는 부처도 없고 여러분도 없습니다. 하나의 완전한 절만이 이루어지며, 그것이 전부입니다. 이것이 열반입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진리는 새롭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본래 있었던 참성품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단히 단순하며, 그것의 실행 또한 대단히 단순합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수행에 대한 접근법은 단순한 기본적 수행과 삶에 대한 단순한 기본적 이해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어떤 그럴듯한 생각들이나 아름다운 것들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진리는 항상 가까이, 여러분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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