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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첫째주 일요법회(12/6,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2-06 13:48 조회7,1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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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달력의 마지막장을 장식하는 첫째주 일요일날, 포살이 있는 12월 첫째주 일요법회가 열렸습니다.

급격히 떨어진 차가운 날씨와 금강정사 김장하는 날이라 법당에는 몇 분의 신도님들만이 함께 하셨네요. 주지 벽암 지홍스님께서 “사성제와 팔정도”에 대하여 법문하셨습니다.

오늘 함께 하지 못하신 분들께서는 꼭 법회보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사회는 여연거사님, 집전 도향거사님, 슬라이드 지킴이 반야향 보살님 그리고 혜명등 보살님의 발원문 낭독이 있었습니다. 대중공양 나눔 봉사와 발열체크는 문수 1구, 차량봉사에 무명 거사님, 온라인법회 방송송출 봉사에 지승 거사님, 거사구의 주차봉사였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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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첫째주 일요일 아침해가 뜹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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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자여,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결코 산목숨을 죽이지 말지니 자비심으로 중생을 사랑하라.
이것이 우바새 우바이의 계이니, 신명이 다 하도록 지킬지니라. 【나무 석가모니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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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자여, 불법승 삼보와 조상님과 부모님과 가족과 이웃을 어느 때나 예경하고 존중하며
한량없는 공덕을 찬탄할지니라. 【나무 석가모니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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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살의식에 이어진 주지 벽암지홍스님의 법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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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성제와 팔정도는 고통의 세계를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된 불자라면 항상 이것을 생각하고 잘 익혀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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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전 도향 거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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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여연 거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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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원문 낭독 혜명등 보살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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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지킴이 반야향 보살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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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송출 봉사 지승 거사님 -

https://youtu.be/0r2HcIoyPsM 클릭하시면 법문 동영상으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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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와 팔정도 

[ 괴로움의 해방 ]

금강정사 주지 벽암 지홍스님

 연기와 삼법인을 통해 세상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면 더 나아가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진리를 구현하는 수행의 길을 가르쳐 주는 길이 바로 사성제입니다. 사성제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뜻으로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행한 최초의 설법입니다. 사성제는 부처님께서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연기의 진리를 현실에 맞게 응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네 가지 진리가 있다. 무엇을 네 가지라 말하는가? 이른바 괴로움의 진리,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진리이다. ≪잡아함경≫ 

 사성제란 괴로움(苦)과 괴로움의 원인(集)과 괴로움의 소멸(滅)과 소멸방법(道)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이를 줄여 고․집․멸․도의 사성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는 서로 서로 원인과 결과를 이루며 현실세계와 이상세계의 대비를 이루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인간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 속에 있습니다. 인간의 현실은 이 네 가지 고통 이외에도 여러 고통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과 모든 존재의 현실입니다. 

 고통이 일어나는 원인은 집착에서 비롯됩니다. 무상한 세계에서 영원한 것을 찾고 자기 것이 본래 없는데도 헛되이 집착함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낳는 것입니다. 이를 설명한 것이 집성제입니다. 

  이 세상에 고통이 있다면 고통 없는 세계도 있고 거기에 이르는 길도 있을 것입니다. 고통이 사라진 해탈, 열반의 세계가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멸성제입니다.

해탈, 열반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 여덟 가지 길이 있으니 바로 도성제인 팔정도(八正道)입니다. 팔정도란 여덟 가지 바른 수행의 길이란 뜻입니다.

정견(正見)은 바른 견해로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이를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 부릅니다. 먼저 바로 보는 것이 바른 삶의 시작입니다.

정사유(正思惟)는 바른 생각으로, 바른 견해를 가짐으로 하여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치에 맞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정어(正語)는 바른 말 입니다. 말은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거짓말, 남을 이간시키는 말이나 욕과 비방하는 말은 그 사람의 비뚤어진 생각과 시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항상 바른 생각과 말을 하여 구업(口業, 입으로 짓는 업)을 짓지 말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부드러운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업(正業)은 바른 행동 입니다. 일체의 모든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른 생각과 바른 말에서 더 나아가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명(正命)은 바른 생활 입니다. 옳은 일에 종사하고 몸과 마음과 말, 즉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청정히 하면서 바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바른 직업관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정진(正精進)은 깨달음을 향한 부단한 노력 을 말하는 것입니다. 옳은 일에는 물러섬 없이 밀고 나가는 정열과 용기를 뜻하기도 합니다. 

 정념(正念)은 바른 기억 을 말합니다. 몸과 말과 뜻이 바르면 생각이 바로 서는 것은 바로 그 이치입니다. 

 정정(正定)은 바른 수행 입니다. 번뇌, 망상에서 바른 견해나 행동이 나올 수 없습니다.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하고 바른 수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성제와 팔정도는 고통의 세계를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된 불자라면 항상 이것을 생각하고 잘 익혀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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