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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기도 회향 및 2월 둘째주 일요법회(2/9,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2-10 07:18 조회3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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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둘째주 일요법회가 2월9일(일) 동안거기도 회향법회를 겸해 

스님들의 인례로 여법하게 봉행되었습니다.

 

동안거회향일은 이번주 수요일인 12일(음,1/15) 정월대보름 날인데요. 

금강정사에서는 많은 대중들이 함께할수 있는 일요일에 모여 동안거회향의 의미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안거기간 1인 1수행법을 각자의 근기에 따라 실천하셨을텐데요.

매일 사경하신 분들, 매일 108배를 하신분들, 매일 참선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신 분들, 그리고 

매일 새벽기도를 참석하여 정진을 이어주신 분들 등등... 

안거기간만이라도 수행정진의 생활을 이어주신 모든분들께 찬탄의 박수를 올립니다. 

 

그리고 석두스님께서는 "지혜는 중도적 견해에서 나온다"의 주제법문을 통해 이로운 삶의 자세를 말씀주십니다.

 

석두스님의 너무너무 반갑게 말씀주신 가피받은 법문영상 저희 금강정사 유튜브 채널에서 함께해 보세요...^^

(유튜브 검색창에서 금강정사 검색하기)

 

오늘 법회일에는 관음구와 보현구의 전법활동도 있었네요.. 그리고 대보름을 맞아 대중들과 함께나누는 

부럼나누기도 있었네요^^

 

법회소식.. 사진소식으로 함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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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안거기도 회향법문.. 석두스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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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보살님께 정성기울여 회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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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발원문낭독을 해주신 김연정(정혜지) 보살님과 보현구 식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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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점심공양은 문구2구에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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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회전 철산역부근에서 관음구가, 법회후 소하동에선 보현구가 전법활동을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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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월대보름 맞이 부럼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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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는 중도적 견해에서 나온다.

 

총무원 기획국장 석두스님

 

 욕지양단(欲知兩段) - 양단을 알고자 하면

원시일공(元是一空) - 원래 하나의 공이니라.

 

양단(兩段)이란 개인의 생각이나 의견에 있어 한 쪽으로 치우쳐 있는 견해를 말합니다.불교적 수행의 기초는 양극단(兩極端)을 떠나 중도(中道)의 견해를 초지일관 견지하는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바르게 가기 위해서는 양극단을 피하고 그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지 대한 고민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부처가 브라흐만교슈라마나전통 사이에서 불교(중도)의 견해를 견지한 태도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불교는 인식론, 존재론, 윤리론, 언어론적 차원에서 모두중도적 견해를 견지합니다.

인식론적 관점에서는절대론회의론사이에서 중도입니다.

절대불변하는 존재(초월적 신)가 있다는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절대론

그런 확실한 존재(초월적 신)는 없다는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는회의론사이의 중도적 관점을 취하는 입장입니다.

존재론적 관점에서는 영원론허무론’(찰나론) 사이의 중도입니다.

돈은 영원한 거야라고 영원한 존재를 긍정하는 영원론그 모든 것은 다 사라져 버릴 것들이야라고 보는허무론’(찰나론) 사이의 중도적 관점을 견지합니다.

윤리적 측면에서는 의무론정의론’(情意論, 정서론)의 사이에서 중도적 견해를 취합니다.삶을 주어진 의무를 충실히 따르는 것으로 보는 의무론

삶은 변덕스러운 감정과 의지에 따라 사는 것이라고 보는정의론사이의 중도적 관점을 취합니다.

언어론적 관점에서는 실재론유명론사이의 중도적입니다.

인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인간)이 존재한다는실재론철수’‘영미같은 개별자가 존재할 뿐, ‘인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이름뿐이라는 유명론사이에서 중도의 입장을 취합니다.

중도의 입장은 현실의 삶에 있어서 모호한 타협이 아닙니다.

어떠한 태도나 생각이 끊임없이 중도의 견해를 취해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친 견해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삶은 늘 양극단 가운데서 어느 한 쪽의 입장을 취하라는 강요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부유’‘가난’‘육체적사랑’‘정신적 사랑’‘홀로’‘함께기타 등등,...

중도적 태도는 한 곳에 고착된 건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의 세기에 따라 안전하게 균형을 잡아가는 배와 같은 유연한 사고를 말합니다.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태도나 견해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중도적 태도란 획일적으로 다수의 의견에 동의하여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좋은 것이 남에게도 좋은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약일 지라도 환자에겐 유익한 치료제이지만, 건강한 사람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공(一空)이란 한 쪽으로 치우친 견해나 생각의 양극단 또한 깨달음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모두가 흘러가는 인연의 소산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영혼은 없다는 단견(斷見), 영혼은 있다는 상견(常見), 무아(無我), 유아(有我)

이 사바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확정된 무엇으로 판단할 수 없기에 무엇으로 정의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물의 본질을 우리는 알 수 없거니와, 인식할 수도 없기에 공한 것입니다.

중도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양극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양극단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포용하는 것입니다.한 쪽을 버리고 취하는 그 태도와 방식 속에는 분열과 갈등이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각자의 판단은 존중되지만, 어떤 판단을 선택하는 것은 다른 쪽을 소외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늘 내포합니다.

 

수행은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 수행하는 것입니다.

수행자에게 좋은 선택도, 나쁜 선택도 없습니다.

그냥 주어진 것을 인정하고, 나아갈 뿐입니다.

판단은 늘 나의 몫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끊임없는 판단의 연속선상에 있어야 하는 우리는 그래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는 중도적 견해를 가지고 있을 때에 비로소 빛을 발합니다.정보의 홍수 속에서 매 순간 판단과 결정을 강요받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더욱더 중도적 견해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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