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둘째주 일요법회(12/8,일)
본문
김장날. 법당엔 60여명의 신도님들이 모여 둘째주 일요법회를 봉행합니다.
총무원 기획국장이신 석두스님은 "한 마음 안에 세상 모든 것이 펼쳐진다"라는 제목의 법문을 해 주십니다. 내 마음의 텃밭을 기름지게 가꾸어야 진정한 불자가 되듯, 내 마음이 세상이고, 세상이 내 마음이라 매사를 분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모든게 마음먹기 나름인 일체 유심조를 말씀 하십니다.
석두스님 법문 영상보기 https://youtu.be/52oVtxDx74s
한 마음 안에 세상 모든 것이 펼쳐진다.
총무원 기획국장 석두스님
一心不生(일심불생) - 한 마음 나지 않으면
萬法無咎(만법무구) - 만 가지 일에 허물이 없다
無咎無法(무구무법) - 허물이 없으면 법도 없으며
不生不心(불생불심) — 생함이 없으면 마음도 없다
일심(一心)은 외부경계를 대할 때나 때때로 마음속에서 대상 없이 발생되는 갖가지 상념들을 말합니다. 이 생각들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났다 사라지곤 합니다. 상념은 생기는 법도 사라지는 방법도 어떤 일정한 패턴이나 루틴 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한 생각의 완전한 소멸은 존재의 사라짐과 동시적 사건에 일어납니다. 한 마음은 오염됨이 없이 발생되고 업력의 습기에 의해 펼쳐지고, 그 오염도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마치 바닷물이 해안가에 다가갈수록 많은 경계(바위나 자갈 등)들과 부딪치면서 파도가 발생되지만 바닷물과 파도는 같은 동체인 것과 같습니다.
파도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일어나듯이, 우리들의 상념들도 또한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불생(不生), 즉 생겨남이 없다고 했을까요?
생겨남은 막을 수 없지만 오염됨은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생각에 인위적인 내 생각을 보태지 않으면 됩니다.
보통 불교에서 인위적이라 함은 부정적 요소의 냄새가 강합니다.
인위적인 것은 보통 존재를 유지시키려는 본능적인 것에 속하는 것들이라
허물이라기보다는 태생적인 욕구인 경우가 많습니다.
타인의 생명보다 본인의 생명을 아끼려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상식의 선을 넘어선 본인의 본능 욕구추구는 비난 받을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생명구조보다 본인의 탈출을 먼저 생각하는 선장의 한 생각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큰 허물이 됩니다.
만법(萬法)은 존재에서 표출되어 내외적으로 드러나는 상념과 행위 등을 포함하는 표상들입니다. 최초의 한 생각은 허물이 아니지만 뒷생각은 허물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허물의 최초 원인은 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한 생각은 일어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이란 늘 허물덩어리 입니다. 한 생각이 허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최초의 생각 뒤에 내 생각을 보태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면 무구(無咎)가 됩니다.
心生則種種法生(심생즉종종법생)
이 마음이 생한 즉 가지가지의 법이 생겨나고
心滅則龕墳不二(심멸즉감분불이)
마음이 멸한 즉 토굴과 분묘가 둘이 아니고
三界唯心萬法唯識(삼계유심만법유식)
삼계가 오직 이 마음이며 만법이 모두 식일 뿐이라
心外無法胡用別求(심외무법호용별구)
마음 밖에 따로 법이 없으니 따로 구할 바가 없느니 [원효스님]
최초의 한 생각 뒤에 오는 뒷생각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자기 수행이 필요합니다. 태생적인 본능을 극복해야 되는 문제이기에 그리 녹녹한 문제는 아닙니다. 때론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놓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설산동자의 설산게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은 덧없이 흘러가니
시생멸법(是生滅法) 모두가 나고 죽는 법이라네
생멸멸이(生滅滅已) 나고 죽는 그 일마저 사라져버리면
적멸위락(寂滅爲樂) 거기에 고요한 즐거움이 있다네
설산동자처럼 본능적 자기보호 본능까지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것 입니다.
理則頓悟 乘悟並消(이즉돈오 승오병소)
이치적으로는 단박에 깨달을 수 있고,
그 깨달음에 의지하여 업장과 번뇌가 녹아가지만
事非頓除 因次第盡(사비돈제 인차제진)
행동적인 면에서는 단번에 제거되지 않는다. 차츰차츰 없어진다. [능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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