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백중 성지순례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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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소개
“여기들어오시는분은 모든일이 다 소생되게 하여주십시오”

- 혜구 두타스님의 원력에 의해 백제 무왕 34년(633)에 창건되다 -
법당 삼존불을 모신 수미단의 후불벽화로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6곳(강진 무위사, 완주 위봉사, 공주 마곡사, 창녕 관룡사, 양산 신흥사, 부안 내소사)의 사찰에 있으며, 이곳 내소사 관음보살이 가장 크다.
내소사 백의관음보살 눈이 마주치고 벽화 끝까지 걸으면 무조건 소원 하나를 들어 주신다는 전설이 유명하다.
법당 삼존불을 모신 수미단의 후불벽화로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6곳(강진 무위사, 완주 위봉사, 공주 마곡사, 창녕 관룡사, 양산 신흥사, 부안 내소사)의 사찰에 있으며, 이곳 내소사 관음보살이 가장 크다.
내소사 백의관음보살 눈이 마주치고 벽화 끝까지 걸으면 무조건 소원 하나를 들어 주신다는 전설이 유명하다.
금산사 소개
“미륵존불을 친견한 진표율사가 중창한 미륵신앙의 성지
“미륵존불을 친견한 진표율사가 중창한 미륵신앙의 성지
전라북도 김제시 모악산 금산사”
전라북도 김제 모악산(母岳山) 기슭에 있는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殿)에는 가운데 높이 11.8미터나 되는 거대한 미륵장륙상(彌勒丈六像)을 가운데 두고 그 양 옆에 높이 8.8미터에 달하는 불보살 두 분을 나란히 모셔 놓았다. 이 거대한 삼존불(三尊佛)을 모셔 놓은 금당(金堂) 밑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절에서는 자물쇠로 문을 잠가 놓고 여간해서는 잘 보여 주지 않는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가 보면 미륵장육상을 떠받치고 있는 직경이 3미터쯤 되고 둘레가 10미터쯤 되며 높이가 70센티미터쯤 되는 큰 가마솥이 있다. 이 가마솥에 귀를 대어보면 물소리가 요란하게 난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가 보면 미륵장육상을 떠받치고 있는 직경이 3미터쯤 되고 둘레가 10미터쯤 되며 높이가 70센티미터쯤 되는 큰 가마솥이 있다. 이 가마솥에 귀를 대어보면 물소리가 요란하게 난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금산사 터에 용이 아홉 마리가 살고 있는 용추라고 부르는 깊은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백제 때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절을 중창하려고 와서 보니 둘레가 1킬로미터쯤 되는 깊은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 한가운서는 바위도 둥둥 떠오르게 할 만큼 힘찬 물줄기가 끊임없이 용솟음쳐 올라오고 있었다.
진표율사는 그 연못을 흙과 돌로 메꾸고 절을 지으려고 했다. 연못을 메꾸려고 아무리 흙과 돌을 갖다 퍼부어도 연못이 매우 깊어서 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진표율사는 승려들을 시켜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용추연못에 숯을 던지고 몸을 씻으면 온갖 질병이 낫고 우환(憂患)이 없어지며 재수 좋은 일이 생긴다고 소문을 냈다. 그 소문을 듣고 백 리 바깥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연못에 숯을 던졌다.
숯은 물보다 가벼우므로 물에 가라앉지 않고 물 위로 떠오른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연못에 숯을 던져서 넓은 연못이 모두 숯으로 메워졌으나 연못 한가운데에 있는 물이 용솟음쳐서 올라오는 부분만은 숯으로 덮을 수 없었다. 힘차게 솟아오르는 물이 숯을 사방으로 밀어내기 때문이었다. 물이 힘차게 솟아오르는 부분에는 숯이 덮이지 않고 직경이 3미터쯤 되는 큰 구멍이 생겼다.
진표율사는 그 연못을 흙과 돌로 메꾸고 절을 지으려고 했다. 연못을 메꾸려고 아무리 흙과 돌을 갖다 퍼부어도 연못이 매우 깊어서 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진표율사는 승려들을 시켜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용추연못에 숯을 던지고 몸을 씻으면 온갖 질병이 낫고 우환(憂患)이 없어지며 재수 좋은 일이 생긴다고 소문을 냈다. 그 소문을 듣고 백 리 바깥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연못에 숯을 던졌다.
숯은 물보다 가벼우므로 물에 가라앉지 않고 물 위로 떠오른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연못에 숯을 던져서 넓은 연못이 모두 숯으로 메워졌으나 연못 한가운데에 있는 물이 용솟음쳐서 올라오는 부분만은 숯으로 덮을 수 없었다. 힘차게 솟아오르는 물이 숯을 사방으로 밀어내기 때문이었다. 물이 힘차게 솟아오르는 부분에는 숯이 덮이지 않고 직경이 3미터쯤 되는 큰 구멍이 생겼다.
진표율사는 돌로 연화대(蓮花臺)를 깎아서 물이 용솟음치는 곳을 막아 뚜껑으로 삼고 그 위에 거대한 미륵불상을 안치(安置)하려고 했다. 그래서 물이 솟아나는 곳을 막는 뚜껑으로 쓰기 위해기 위해 큰 돌 한 개를 깎아서 미륵불상을 떠받칠 수 있는 연화좌대를 만들었다.
석수장이들한테 거대한 연화대를 깎아서 만들게 하고 그것을 수백 명이 힘을 합쳐 힘들게 움직여서 물이 용솟음치는 곳으로 운반하여 물구멍을 덮어 두었다. 그런데 그 날 밤 한밤중에 별안간에 벼락이 치는 듯한 큰 소리가 나면서 물구멍을 막아 두었던 연화좌대가 솟구쳐 올라오는 물의 힘에 떠밀려 공중으로 높이 날아 올라가서 수십 미터나 떨어진 마당 귀퉁이에 떨어져 버렸다. 지금도 금산사 마당 한 켠에 돌로 깎아서 만든 큰 연화대가 있는데 크기가 사방 7-8자 되고 둘레가 10미터쯤 된다. 그 때 날아 올라가서 떨어진 그 장소에 지금까지 그대로 있는 것이다.
진표율사는 궁리 끝에 구리로 큰 가마솥을 만들어 용천수(涌泉水)가 올라오는 구멍을 막았더니 마침내 연못이 잠잠해졌다. 거대한 솥을 배처럼 힘차게 용솟음치는 물 위에 떠 있게 하고 그 위에 미륵불상을 세워서 모신 것이다. 그 가마솥이 지금까지 연화좌대를 대신하여 높이 11미터가 넘는 거대한 미륵존불을 떠받들고 있다.
석수장이들한테 거대한 연화대를 깎아서 만들게 하고 그것을 수백 명이 힘을 합쳐 힘들게 움직여서 물이 용솟음치는 곳으로 운반하여 물구멍을 덮어 두었다. 그런데 그 날 밤 한밤중에 별안간에 벼락이 치는 듯한 큰 소리가 나면서 물구멍을 막아 두었던 연화좌대가 솟구쳐 올라오는 물의 힘에 떠밀려 공중으로 높이 날아 올라가서 수십 미터나 떨어진 마당 귀퉁이에 떨어져 버렸다. 지금도 금산사 마당 한 켠에 돌로 깎아서 만든 큰 연화대가 있는데 크기가 사방 7-8자 되고 둘레가 10미터쯤 된다. 그 때 날아 올라가서 떨어진 그 장소에 지금까지 그대로 있는 것이다.
진표율사는 궁리 끝에 구리로 큰 가마솥을 만들어 용천수(涌泉水)가 올라오는 구멍을 막았더니 마침내 연못이 잠잠해졌다. 거대한 솥을 배처럼 힘차게 용솟음치는 물 위에 떠 있게 하고 그 위에 미륵불상을 세워서 모신 것이다. 그 가마솥이 지금까지 연화좌대를 대신하여 높이 11미터가 넘는 거대한 미륵존불을 떠받들고 있다.
그 가마솥은 직경이 여섯 자이고 둘레가 스무 자쯤 된다. 열 명쯤 되는 사람이 앉을 수 있을 만한 넓이다. 큰 가마솥으로 뚜껑으로 만들어 물이 솟아오르는 곳을 덮어서 막아놓고 그 위에 미륵불상을 세운 것이다.
금산사 미륵전 밑으로 들어가 보면 그 가마솥을 눈으로 볼 수 있는데 솥 전체를 다 볼 수는 없고 언저리만 넓적하게 보인다. 솥을 손으로 만져 보니 구리가 아니라 쇠로 만든 것이었다. 솥을 손으로 두들겨 보았더니 맑은 쇳소리가 났다.
나는 미륵불전(彌勒佛殿)의 불전함(佛錢函)에 돈을 조금 넣고 불상한테 절을 몇 번 하고 나서 불단(佛壇) 밑으로 들어가서 과연 전설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해 보았다. 큰 솥을 밑에 받쳐 놓은 다음 그 위에 미륵불을 세워서 모신 것이 틀림없다. 큰 솥이 힘차게 용솟음치는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이다.
진표율사가 처음 세운 미륵존불(彌勒尊佛)은 1598년 정유재란 때에 불에 타서 없어졌고 그 뒤 1627년에 다시 조성하여 세운 것이 1935년에 실수로 일어난 화재로 인해 앞으로 넘어져서 완전히 부서졌다. 지금 있는 미륵존불은 그 뒤에 조각가 김복진이 2년 9개월 동안 작업을 해서 만들어 1938년에 세운 것이다.
금산사 미륵전 밑으로 들어가 보면 그 가마솥을 눈으로 볼 수 있는데 솥 전체를 다 볼 수는 없고 언저리만 넓적하게 보인다. 솥을 손으로 만져 보니 구리가 아니라 쇠로 만든 것이었다. 솥을 손으로 두들겨 보았더니 맑은 쇳소리가 났다.
나는 미륵불전(彌勒佛殿)의 불전함(佛錢函)에 돈을 조금 넣고 불상한테 절을 몇 번 하고 나서 불단(佛壇) 밑으로 들어가서 과연 전설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해 보았다. 큰 솥을 밑에 받쳐 놓은 다음 그 위에 미륵불을 세워서 모신 것이 틀림없다. 큰 솥이 힘차게 용솟음치는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이다.
진표율사가 처음 세운 미륵존불(彌勒尊佛)은 1598년 정유재란 때에 불에 타서 없어졌고 그 뒤 1627년에 다시 조성하여 세운 것이 1935년에 실수로 일어난 화재로 인해 앞으로 넘어져서 완전히 부서졌다. 지금 있는 미륵존불은 그 뒤에 조각가 김복진이 2년 9개월 동안 작업을 해서 만들어 1938년에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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