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법법회(8월1일)
본문
이웃과 함께하고 있습니까?
법문:주지스님
산업화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린 유산 가운데 가장 안타까운 것은‘공동체정신’입니다. 불교와 유교의 사상적 토대 위에 구축된‘공동체정신’은 긴 세월 우리사회를 건전하게 유지시킨 원동력이었고, 크고 작은 재난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한 튼튼한 울타리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던 공동체가 붕괴되었고, 나의 이익만 따지는 이기심이 만연해 있습니다. 그 이기심이 확대되어 정치적 이념의 차이, 종교의 차이, 지역의 차이, 출신학교의 차이에 따라 집단을 이루고는 화합과 협력보다는 갈등과 투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는 세속사회에서만 일어난 현상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이 세상 모든 것은 나도 아니고, 나의 것도 아니다”하셨습니다. 나와 너를 구분하고 나와 너가 다투는 것이 곧 어리석음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부대중의 공유물인 사찰마저 서서히 사유화되고 있고, 물과 젖처럼 화합을 이루고는 서로 반목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우주 일체만물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 존재하는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돌보는 것은 곧 나의 아픔을 돌보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달픈 나그네를 위해 객실을 열어두고, 굶주린 이와 한 끼 밥을 나누고, 아픈 이를 성심으로 보살피던 절간의 미덕은 어느덧 옛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회를 품안에 끌어 안고 함께 아파하기는커녕 같은 불교도의 아픔마저 강너머 불구경하듯 무관심합니다.
나와 너를 나누는 어리석음을 버리는 곳이 사찰이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자가 부처님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불교도들은 혹 불교의 이름으로 타종교와 반목하고 있지는 않은지, 포교와 전법의 이름으로 개인의 명예를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기도와 수행의 이름으로 탐욕을 키우고 있지는 않은지, 깨달음의 이름으로 교만을 키우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동서양의 많은 지식인들이 21세기 문명사적 전환의 시기에 필요한 대안문명으로 불교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불교는 그 역할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지 못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하지 못한 한국불교의 사회적 지도력은 현재 다른 종교에 한참이나 미치지 못함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과거 부처님의 제자들은 늘 경건한 자세로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바로 하였기에 가는 곳마다 선량한 자들로 환영 받았고, 갖가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친절히 가르쳐주었기에 가는 곳마다 지혜로운 자들로 환영받았고, 자비와 인내로 모두를 보듬었기에 가는 곳마다 행복한 사람들로 칭찬받았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다른 종교인들은 일찍이 의료와 복지에 투신해 환자들을 돌보고 장애인들과 함께하였으며, 알코올중독자와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시련과 아픔에 귀를 기울였고, 소외된 노인들과 미혼모들에게 다리 펼공간을 마련해 주며 행복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많은 타종교인들이 가는 곳마다 훌륭한 사람들로 칭찬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만 합니다. 지금 불교도들은 이웃과 사회로부터 존경받고 있습니까?
과연 이 시대의 사표가 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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