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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5(2011)년 10월5일 호법법회(회주스님)

작성자 금강정사 작성일11-10-05 10:08 조회6,9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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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5(2011)년 10월5일 호법법회


법문 : 회주스님

주제 : 자장율사와 호법



---------------------법   문------------------------

                       
        자장율사와 호법


자장율사는 신라에 화엄사상을 최초로 소개한 스님이다. 우리

에게는 통도사에 한국불교의 계율을 상징하는 '금강계단(金剛寶

戒)'을 세워 교단의 계율과 기강을 세우기 위해 헌신한 율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신라시대 진덕여왕 당시 활약한 자장스님의

속명은 김, 이름은 선종으로 소판 벼슬을 지낸 김무림의 아들로

태어났다. 늦도록 자식이 없어 '아들을 낳으면 부처님께 바쳐 불

교를 빛내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기도를 올리자 천분의 관세음

보살을 조성하라는 부처님의 계시를 받고 천수관세음보살을 조

성하였다. 어느 날 스님의 어머니가 별이 떨어져 품 안으로 들어

오는 꿈을 꾸고 잉태하여 4월8일 부처님 오신 날에 스님을 낳았

다고 한다. 그 뒤 출가한 자장율사는 638년(선덕여왕 7년)에 제

자 10여 명과 함께 당나라로 가서, 문수보살이 머물러 있다는

청량산의 문수보살상에 기도하였다. 그 뒤 장안으로 갔는데, 당

나라 태종이 사신을 보내어 후한 대접을 하였다고 한다. 643년

(선덕여왕 12년) 선덕여왕은 당 태종에게 글을 보내어 자장스님

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귀국길에 본국 신라에 불상과 불경

등이 미비함을 생각하고 대장경 한 질과 번당(幡幢)·화개(華蓋)

등을 골고루 마련하였다. 이때 가져온 400여 함의 장경(藏經)은

뒤에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에 봉안되었다. 선덕여왕은 당나라

에서도 자장스님을 크게 우러러 보았고, 스님이 바른 가르침을

널리 지니고 있으므로 불교의 정리와 교단의 통합을 위하여 자장

스님을 대국통으로 삼고 분황사에 머물게 하였다.

또 궁중에 초청되어『섭대승론』을 강의하고 황룡사에서『보살

계본』을 설하였는데 7일 밤낮으로 하늘이 감로를 내리고 구름

과 안개가 자욱하여 강당을 덮었다고 한다.

스님은 황룡사를 비롯 월정사, 태화사, 대둔사를 차례로 건립했

다. 또한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울 것을 건의, 645년(선덕여왕14

년) 완성한다. 이는 당시의 어려운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호국

정신과 삼국통일의 염원에서였다. 그리고 통도사를 창건하여 당

나라 유학 중 문수보살님께 받은 발우와 사리 한 과를 그곳에 모

시고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했다.

『삼국유사』에는 나라에서 계(戒)를 받고 불법(佛法)을 받드는

것이 열 집에 여덟아홉 집이나 되었으며 스님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해마다 늘어났다. 이에 통도사를 창건하고 계단(戒壇)을

쌓아 사방에서 모여드는 사람을 받아들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고승전』은 불법을 잘 보호한 사람을 기록한「호법」편에서

자장스님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바로 이 무렵 청구(신라)에 불법이 전한 지 백년에 되었으나 아직

정착하기에는 수행과 부처님을 받드는 법에 모두 모자람이 많았

다. 이에 모든 대신들이 기강을 바로잡을 것을 논의하였다. 왕과

신하들이 모여 의논한 결과 '일체불법에는 마땅히 규범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승통(僧統)인 자장 스님에게 맡기자' 라고 하였

다. 자장스님이 여러 스님들에게 각각 이전부터 익히던 것을 더

열심히 하며 다시 강관(규율을 바로잡는 사람)을 두어 감찰하여

유지하고, 보름마다 계를 설하고 율을 의지하여 (업장을) 참회하

게 하며 봄과 겨울에 총괄적으로 시험하여, 가지고 범함(持犯)을

알게 하였다. 이에 의거하여 말한다면 호법보살이란 바로 이 사

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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